AI 추천 뉴스
"수사하지 말라고 했다"…검사복 벗고 '탈모 변호사' 된 사연 [이정우의 중대사안]
"지방 중수청 36명이 프린터 한 대로 일해"
"검찰청 18곳 지역을 중수청 6곳이 담당"
"공소청에 낸 핵심 증거 '제출 반려' 당해"
"경찰 결정서 그대로 쓰는 '기재동' 늘어"
"개정법 10점 만점에 3점…문제 고착화될 것"
"검찰청 18곳 지역을 중수청 6곳이 담당"
"공소청에 낸 핵심 증거 '제출 반려' 당해"
"경찰 결정서 그대로 쓰는 '기재동' 늘어"
"개정법 10점 만점에 3점…문제 고착화될 것"
누리꾼들과 남다른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주인공은 이영훈 법무법인 위온 변호사다. 자신의 탈모를 소재로 한 짓궂은 댓글에도 일일이 재치 있는 답글을 달면서 인스타그램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변호사의 계정 팔로워는 어느덧 11만1000명에 달한다.
이 변호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두고 "광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의 이력을 보면 단순히 재미있는 사람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소위 '엘리트'에 가깝다. 그는 경찰대 법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 로스쿨을 거쳤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서울남부지검 등에서 검사로 10년을 일했다. 이 기간 '대학생 연합동아리 마약 사건' 등 굵직한 사건도 다뤘다.
그러다 올해 돌연 검찰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형사사법제도 개편의 영향이었다. 이 변호사는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이유였다면 검찰이 잘나가던 2024년에 나왔을 것"이라며 "반강제적으로 검찰을 나왔다. 나라가 저보고 수사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한경닷컴은 7일 이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형사사법제도 개편 이후 현재 사법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봤다.
◇ "지방은 36명 사무실에 프린터 1개"
이 변호사는 "요즘 중대범죄수사청 과장·국장들을 많이 만난다. 한 지방 중수청은 아직까지 36명이 쓰는 사무실에 팩스기 하나, 프린터 하나가 있다고 한다"며 "옛날 검사실에 하나씩 있던 것인데 용량을 많이 넣으면 역류하고 난리였다. 인쇄물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수사 서류 유출로 징계를 받을 텐데 무서워서 인쇄할 수 있겠느냐. 서울 중수청은 보급이 많이 됐지만, 지방 중수청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이 맡던 지역을 중수청 6곳(서울·수원·대전·대구·부산·광주)이 담당하는 구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대구 중수청이면 대구시에서 발생한 사건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영덕, 청도 같은 곳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심이 있겠느냐"며 "옛날에는 지청으로 나눠 지역 커버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광역시권으로 몰아넣어 물리적 거리가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 지방분권 시대라고 난리인데 수사는 역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서울 중수청은 엘리트들이 많이 가서 과거 중앙지검 특수부처럼 잘할 것이다. 다만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 핵심 증거 '제출 반려'…"상상도 못해"
최근 맡은 성범죄 사건에서도 이런 혼선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이 변호사는 "경찰 수사관이 자료는 천천히 내라고 해서 제출 시기를 놓쳤는데, 그사이 바로 불송치했다"며 "이의신청을 하고 못 낸 자료를 검사에게 내려 했다. (사건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료였다. 그런데 제출 반려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제출 반려라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며 "사무장이 공소청에 가서 자료를 그대로 받아와 갖고 있다가, 보완수사 서류가 내려가면 경찰에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술처럼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없어지는 증거도 있는데, 사건이 한 번 경찰 단계로 돌아가면 사건 담당자와 접수 시점을 찾기도 어렵다. 처음처럼 또 불송치될까 봐 저도, 의뢰인도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법 개정 전으로 돌아가는 게 유일한 방법"
경찰 수사의 질은 형사사법제도 개편 전보다 나아졌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일선 수사관들은 보완수사 요구를 받으면 한 달간 그걸 해야 하는 게 큰 부담이다. 이에 가급적 보완수사 요구를 안 받으려고 더 내실 있게 수사하려는 경향이 감지된다"며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모르면 찾아보고, 저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그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다만 "검사들도 수사권이 없으니 경찰 판단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례가 많다. 경찰 단계에서 부실 수사가 이뤄지면 고소인은 항고해야 하고 피해자는 법원에 가서 다퉈야 한다"며 "조금만 더 확인했으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것들인데, 보완수사 요구도 절차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검사들이 기록을 좀 대충 본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고소 사건을 불기소할 때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를 한 글자도 안 고치고 그대로 원용하는 걸 속된 표현으로 '기재동'이라고 한다. 옛날엔 그렇게 하면 '네가 충분히 밝힐 수 있는데 왜 경찰 의견을 따르냐'고 부장검사들한테 혼났다"며 "지금은 검사에게 수사권도 없으니 '그냥 경찰 의견대로 하지'라는 심리가 더 커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재산범죄는 권리관계를 따지는 민사 쟁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쟁점을 경찰이 판단하는 게 아쉽다"며 "검사들도 보완수사권이 없고 자료를 못 받으면 경찰 판단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고 짚었다.
형사사법제도가 수년 안에 개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에도 "공무원 특성상 회귀는 쉽지 않다"며 "새로 들어오는 검사들 머릿속에는 수사라는 게 없을 것이다. 몇 년 뒤 기존 제도로 회귀하고 싶어도 수사 역량 자체가 없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의 시스템이 안 좋은 형태로 고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대사안'은 사법(司)·안보(安) 이슈를 짚습니다. 검찰청 폐지·국군사관학교 통합 같은 굵직한 변화부터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이야기까지, 이정우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기록하겠습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