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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5조 PRS 제동…대기업 자금조달 비상
금감원, 증권사에 'PRS 자제령'
PRS는 기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등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파생상품 계약이다. 차입금과 달리 부채비율을 높이지 않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금감원은 PRS가 주식담보대출과 비슷한 구조인데도 회계상 차입금으로 인식되지 않아 ‘그림자금융’으로 변질할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IPO·유증 이어 PRS까지…기업 "신사업 무슨 돈으로"
금융당국, 증권사 PRS에도 '현미경 잣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주요 증권사 주가수익스와프(PRS) 담당자를 불러 모았다.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이 점검 대상이었다. 금융당국은 이 자리에서 PRS를 활용한 자금 조달이 재무제표상 차입금으로 드러나지 않는 만큼 개인투자자가 기업의 실질적인 부채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PRS까지 막히면 신사업 준비가 한층 더 힘들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PRS로 25조원 조달
4일 투자은행(IB)업계와 한국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이달 기준 국내 PRS 계약 잔액은 25조원을 넘어섰다. 2022년 992억원에 불과하던 신규 계약 금액은 2024년 4조1436억원, 지난해 9조8129억원, 올해 10조5337억원으로 급증했다. 기업의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증권사도 수익성 높은 PRS 거래를 적극적으로 확대했다.그룹별 누적 계약 금액은 SK그룹이 7조3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한화그룹(4조9834억원), LG그룹(4조5000억원), 포스코그룹(2조5000억원), 롯데그룹(1조8000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대기업의 신규 거래가 나오고 있다. 이날까지 공개된 상장 계열사 지분 기반 PRS 계약 7건의 규모는 10조533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자회사 지분을 남겨두고 나머지 지분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28일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약 2.79%를 활용해 2조5000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맺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8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DX 지분을 활용해 총 2조5002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지분으로 약 2조185억원, 포스코DX 지분으로 약 4817억원을 조달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포스코홀딩스는 두 자회사 지분율을 각각 50%로 낮추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한화그룹도 PR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4월 한화오션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1조7000억원을 조달한 데 이어 지난달 16일에도 1조3834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9월 비상장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지분 일부를 활용해 약 2998억원을 조달했다.
◇올해 파생 손실 1조7000억원 달해
올해 상장 계열사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한 6건의 PRS 계약 중 5건은 이날 종가 기준 주가가 계약 기준가격보다 하락했다. 현재 주가와 계약 기준가격의 차이를 단순 계산한 금액은 약 1조7684억원에 달했다. 한화시스템은 한화오션 지분으로 맺은 두 차례 PRS 계약으로 약 1조2187억원의 파생손실을 안게 됐다. 이어 SK㈜가 3690억원, 포스코홀딩스가 1107억원, 일진홀딩스가 700억원 등이다.기업의 평가손실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재무제표상 차입금이 늘어나지 않아서다. PRS는 통상 2~3년 만기로 체결되지만 만기 연장도 가능해 사실상 장기 차입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금융당국은 PRS 손실이 재무제표에 기재되지 않아 투자자가 관련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가 기관투자가 등에 재매각한 PRS 상품이 개인투자자에게도 판매됐을 가능성 역시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PRS 창구지도를 총량규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창구지도는 비공식적인 지시, 구두, 공문 등을 통해 금융사의 의사결정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행정지도 방식이다. 강제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증권사가 금융당국의 지침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PRS 계약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증권사도 적극적으로 PRS 영업을 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 주가수익스와프(PRS)
기업과 증권사가 계약 만기 시 주가가 기준가보다 낮거나 높으면 서로 차익을 물어주는 파생상품 계약이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이 차익을 돌려받지만 하락하면 현금으로 메워야 한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