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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땐 환영하더니 나갈 땐 세금"…이탈리아 부자들 '술렁'
부자 불러들인 이탈리아, 떠날 땐 26% 과세 추진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집권 연정은 최근 예산안 초안에 자산 80만유로 이상 보유자가 이탈리아를 떠날 경우 보유 자산의 미실현 이익에 26%의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출국세' 도입 방안을 담았다.
주식 등 금융자산을 실제로 매각하지 않아도 보유 기간 발생한 평가이익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다. 다만 시행을 위해서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정부가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한 이번 출국세는 출국 전 10년 가운데 최소 6년 동안 이탈리아의 세법상 거주자였던 사람에게 적용된다.
해외로 이주한 뒤에도 일정 기간 금융자산을 현금화하지 않으면 납부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자산 매각 여부와 거주 기간에 따라 실제 세금 부담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이번 조치는 지난 10년간 이탈리아가 추진해 온 부유층 유치 정책과 대조적이다. 이탈리아는 자국을 떠나는 부유층을 붙잡고 해외 고액 자산가와 전문직 인력의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해 왔다. 대표적인 제도가 2017년 도입된 해외 이주자 대상 정액세 제도인 '플랫택스'다.
이 제도에 따라 이탈리아로 이주한 외국인 등은 해외 자산과 소득에 대해 15년간 매년 일정 금액의 세금만 납부할 수 있다. 제도 도입 당시 연간 세액은 10만유로로 책정됐다. 이와 별도로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자국민을 포함한 신규 이주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5년간 급여의 일부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부과하는 감면 혜택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이탈리아 정부의 부유층 세제 정책은 혜택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밀라노에 정착한 초고액 자산가들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멜로니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플랫택스 세액을 두 차례 인상했다.
이에 따라 도입 당시 10만유로였던 연간 정액세는 현재 30만유로로 세 배 높아졌다. 여기에 출국세까지 도입되면 이탈리아로 이주하는 단계뿐 아니라 장기 거주 후 다른 국가로 떠나는 과정에서도 세금 부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출국세 도입을 통해 내년에 370만유로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후 4년 동안에는 연간 세수가 670만유로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2032년부터는 연간 세수가 340만유로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로 이주한 자산가들이 일정 기간 이후 세금 환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민간 자산관리 및 세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이탈리아의 부유층 유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로펌 미시콘 드 레야의 찰리 소스나 프라이빗 자산·세무 부문 책임자는 "이번 조치는 상당히 중대한 변화이며, 이미 이탈리아로 이주했거나 그곳에 거점을 둔 많은 고객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혜택을 기대하고 이탈리아에 정착한 사람들까지 거주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출국세 적용 기준인 6년의 거주 기간이 오히려 부유층의 조기 이탈을 유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회계·세무 자문회사 무어 킹스턴 스미스의 팀 스토볼드 세무 책임자는 이번 제안이 잠재적인 출국세 부담이 발생하는 6년 거주 기준에 도달하기 전에 이탈리아를 떠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탈리아를 장기적인 거주지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훨씬 덜 매력적인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출국세가 기존 부유층 유치 정책의 목적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탈리아는 해외 자산과 소득에 대한 정액세 혜택을 통해 부유층의 이주를 장려해 왔지만, 출국 시 미실현 이익까지 과세하면 장기간 거주할수록 향후 이주에 따른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세법상 거주 기간이 출국세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고액 자산가들의 거주 기간과 금융자산 처분 시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출국세 도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의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해외 이주 이후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환급 규정도 실제 세금 부담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