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앉은 이탈리안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미켈레 데 루키(좌)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마우로 포르치니(우). 이날 마우로는
나란히 앉은 이탈리안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미켈레 데 루키(좌)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마우로 포르치니(우). 이날 마우로는 "학창 시절 디자인을 공부할 때마다 거론되던 거장 미켈레 데 루키와 마주 앉을 수 있어 영광"이라며 연신 감격을 표현했다. /더쇼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조명 '톨로메오'를 만든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미켈레 데 루키와 3M·펩시코를 거쳐 삼성전자 디자인을 이끄는 마우로 포르치니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를 꿈꿔온 두 사람이 지난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디자인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에 나선 (왼쪽부터) 마우로 포르치니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멤피스 운동의 주도적 인물인 미켈레 데 루키, 이희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더쇼룸
디자인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에 나선 (왼쪽부터) 마우로 포르치니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멤피스 운동의 주도적 인물인 미켈레 데 루키, 이희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더쇼룸
서로 다른 세대와 궤적을 지나온 두 사람은 이날 이희진 홍익대 교수 진행 아래 ‘AI 시대 디자인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미켈레는 AI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을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는 그 어떤 인류도 갖지 못했던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와 있다”며 “이전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아이디어와 생각, 성찰 등을 디자인에 실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더니즘의 물결 속에 디자인에 위트와 개성을 더한 멤피스 운동을 일으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미켈레 데 루키. /더쇼룸
모더니즘의 물결 속에 디자인에 위트와 개성을 더한 멤피스 운동을 일으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미켈레 데 루키. /더쇼룸
미켈레는 어디든 종이와 메모장을 들고 다닌다.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수염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더쇼룸
미켈레는 어디든 종이와 메모장을 들고 다닌다.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수염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더쇼룸
새로운 도구를 다루는 데 필요한 책임도 강조했다. 미켈레는 AI를 불에 빗댔다. 유용하게 쓸 수 있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숲과 초원을 태우고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AI 역시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우로 역시 AI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AI는 사람이 지닌 편견 없이 모든 것을 대하기 때문에 조화를 이뤄 사용한다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기업 브라운, 3M, 펩시코를 거쳐 삼성전자 최초의 외국인 디자인 총괄 사장이 된 마우로 포르치니. 그는 청년 시절 자신이 동경하던 디자이너 스테파노 마르자노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고, 그에게 영어를 배우라는 조언을 얻은 후 아일랜드 유학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더쇼룸
글로벌 기업 브라운, 3M, 펩시코를 거쳐 삼성전자 최초의 외국인 디자인 총괄 사장이 된 마우로 포르치니. 그는 청년 시절 자신이 동경하던 디자이너 스테파노 마르자노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고, 그에게 영어를 배우라는 조언을 얻은 후 아일랜드 유학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더쇼룸
제품 디자인의 획일화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마우로는 “냉장고부터 휴대폰, 웨어러블 기기 등이 서로 비슷한 소수의 제품으로 수렴해가는 현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향하는 산업 디자인의 흐름에 대해 미켈레에게 조언을 구했다.

미켈레는 “전환기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더 큰 획일성이 아닌 더 큰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수염에 얽힌 이야기를 꺼냈다.

미켈레는 “전환기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더 큰 획일성이 아닌 더 큰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개성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꺼낸 것은 자신의 수염 이야기였다. 미켈레에게는 부모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닮은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다. 고향을 떠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형제는 베네치아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수염을 밀었고, 미켈레는 피렌체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수염을 길렀다.
일란성 쌍둥이인 형과 달라보이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수염을 길러 온 미켈레는 이 사건을
일란성 쌍둥이인 형과 달라보이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수염을 길러 온 미켈레는 이 사건을 "내 인생의 첫 번째 디자인 프로젝트" 라며 디자인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더쇼룸
미켈레는 수염을 기른 선택을 두고 “내 인생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가장 닮은 사람과의 차이를 만드는 데서 그의 디자인이 시작된 셈이다.

두 사람은 AI 시대 디자이너의 책임을 강조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미켈레는 “디자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지만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