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장자동화(FA) 관련 기기 업체 미스미그룹이 고졸과 대졸의 초봉 차이를 없애기로 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학력에 따른 급여 차이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AI가 신입 업무 대체…日기업들, 대학 간판보다 '일머리'에 더 큰 보상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스미그룹은 이달부터 초임을 학력과 관계없이 월 30만3000엔(약 257만원)으로 통일했다. 수당과 복리후생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3년 차 이하 경력직 역시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특정 시점에 신입직원을 일괄 채용하는 공개채용은 폐지했다. 상황에 따라 과제를 찾아내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에는 AI를 활용한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은 대학 교육 여부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도요타에서 30년간 인사업무를 담당한 가토 스카와 미스미 최고인사책임자(CHO)는 “신입 직원이 주로 맡던 자료 작성과 정보 수집 대부분을 AI가 할 수 있게 되면서 요구되는 업무가 달라졌다”며 “AI 시대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와 과제를 찾아내는 능력은 학력과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업무 성과에 따른 보상 차등은 더 일찍 적용된다. 기존에는 입사 후 2년간 똑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올해 입사자부터는 1년 차 평가를 바탕으로 이듬해부터 급여가 갈린다. 출발선의 차이는 없애되 성과에 따른 차이는 빠르게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미스미그룹과 같은 사례는 일본은 물론 미국과 인도 기업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는 “학위 대신 역량을 바탕으로 더 다양한 지원자 풀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며 “AI 도입으로 대학 교육이 기업에서 높은 급여로 이어진 전통적 경로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실무 기술과 산업별 전문성이 보상받는 흐름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졸·대졸 초봉 통일 '학력 파괴'
과제 발굴·협업 능력 등 검증…美·印도 실무능력만으로 채용

연공서열 중심의 보상과 신입사원 공채는 오랫동안 일본 기업을 떠받친 고용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기업조차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인도에서도 대학 졸업장보다 실무 역량을 중시하는 채용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고졸과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통일한 미스미그룹이 채용 과정에서 확인하려는 것은 과제를 찾아내고 주변 사람과 해결하는 능력이다. 지원자에게 과거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다른 사람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등을 묻는다. 자료 작성과 정보 수집을 AI가 대신하는 환경에서는 지식의 양보다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도 보상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후지쓰는 올해 4월 입사자부터 학력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하던 초임을 직무와 책임 수준에 따라 결정한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을 맡을 수 있다면 신입사원도 그에 맞는 보상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업무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 사업에 참여하는 1~6개월의 유급 장기 인턴십도 확대했다. 히타치제작소는 비관리직의 처우를 직무의 역할과 책임 중심으로 전환했다. 통신업체 KDDI 역시 일률적인 초임을 폐지하고 능력에 따른 급여체계를 도입했다.

변화는 퇴직급여 산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정규직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2026회계연도 안에 퇴직급여의 근속연수 가산을 폐지한다. 근속연수가 퇴직급여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 AI 역량을 갖춘 경력 인재 채용에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마루베니는 퇴직급여 일부를 상여금과 함께 미리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 이후로 미뤄두는 보상을 재직 중 지급해 AI 인재 확보 경쟁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아예 대학을 거치지 않고 실무에 진입하는 경로를 마련하는 기업도 있다. 미국 팰런티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교 졸업자를 선발해 교육하고 개발팀에 배치하는 ‘메리토크라시 펠로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에게 월 5400달러(약 724만원)를 지급하며 실무교육을 제공한다. 회사는 지난달 1일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의 기업용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올브레인은 올해 6월 공개 채용부터 출신 대학과 학위, 성적에 가산점을 주지 않고 AI로 실무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보수 역시 통일했다. 학력이 채용의 주요 잣대로 쓰이던 관행에서 벗어나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을 확인하려는 시도다.

도쿄=최만수 특파원/김주완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