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피난처’로 주목받으며 글로벌 시가총액 1위에 오른 애플마저 메모리 대란에 발목을 잡혔다. 아이폰 판매 호조로 매출은 늘었지만 메모리 비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제품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메모리 비용 더 높아질 것”
애플은 2026회계연도 4분기(7~9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2% 증가한 1144억8000만달러(약 154조원)를 기록했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시장 추정치(1133억9000만달러)를 웃돌았다.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18 프로 초기 판매 호조와 제품 가격 인상 효과에 힘입어 아이폰 매출이 575억8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7.5% 많아진 영향이다. 애플은 “올해 10~12월 매출도 1년 전보다 7~10%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역사상 최대 분기 매출”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장은 다르게 반응했다.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는 한때 4% 가까이 떨어졌다.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면 마진율이 낮아진다는 사실이 퍼진 영향이다. 존 터너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메모리 가격은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4분기 메모리 가격은 전 분기보다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3분기 50.1%이던 매출총이익률은 4분기 47.89%로 떨어졌고, 2027회계연도 1분기엔 45~46%로 더 낮아질 전망이다. 터너스 CEO는 “10~12월에는 메모리 비용이 더 높아지고 이후에도 비용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가격 올려도 마진 하락
애플은 메모리 비용 인상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아이폰17(이하 국내 출시가) 가격을 129만원에서 145만원으로 12.4%, 14인치 맥북 프로를 349만원에서 479만원으로 37.2% 올린 게 그 예다.
하지만 모두 전가하지는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폰17·18 프로 소비자가 메모리 용량을 256GB에서 512GB로 늘리기 위해 내는 비용 200달러 중 애플이 쓰는 비용은 아이폰17 프로 기준 15달러, 가져가는 이윤은 185달러라고 추산했다. 이에 비해 아이폰18 프로는 애플이 66달러를 쓰고 134달러의 이윤을 낸다. 아이폰 메모리 확장으로 남기는 마진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간 애플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메모리 공급사를 압박해 마진율을 사수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 큰손으로 떠오르며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 공급사 재무제표를 통째로 가져오도록 요구하고, 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 납품을 거부하던 애플의 공급망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크랙 게이트엔 “극히 일부”
메모리 병목은 제품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비 칸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날 “7~9월 공급 제약의 주원인이 시스템온칩(SoC)을 생산하는 첨단 반도체 공정이었다면 10~12월은 메모리”라고 언급했다. TSMC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는 AI 칩 생산이 원활해졌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메모리 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애플은 9월 제조 구매약정 규모가 900억달러(약 120조6000억원)로 전 분기보다 330억달러 증가했다고 밝혔다.
터너스 CEO는 공급망 문제로 출하가 제한되고 있는 아이폰 듀오와 관련해 “수급 균형이 언제 맞춰질지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폰 듀오 내부 디스플레이에서 균열이 생기는 ‘크랙 게이트’에 대해서는 “반품 비율이 극히 낮다”고만 했다.
애플은 매그니피센트7(M7·미국 주요 기술주 7개) 중에서도 AI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 ‘AI 헤지’ 종목으로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주가는 6월 말부터 이날까지 23% 상승했고, 같은 기간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3배에서 39.5배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