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티후아나의 복잡한 속사정
멕시코 티후아나는 미국과 국경을 맞댄 세계적인 제조·물류 거점이다. 외국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들여와 조립·가공한 뒤 수출하는 보세가공산업이 발달했다. 가전·전자부터 자동차, 의료기기, 항공·정밀기계까지 글로벌 기업의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곳에서 북미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제조한다. 물류·패션·전자상거래 기업까지 몰려들면서 티후아나는 북미 공급망의 요충지로 성장했다.

이 도시의 경쟁력은 지리적 이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관세 제도에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미국 소비자에게 보내는 800달러 이하 소액 소포에는 관세가 면제됐다. 해외에서 생산한 저가 상품을 티후아나의 창고에 쌓아두고 작은 택배로 나눠 미국에 배송하는 사업이 성행한 배경이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해 8월 29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소액면세 제도를 중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멕시코도 우회 수출 통제에 나섰다. 통관 서류와 원산지 증빙을 강화하는 한편, 올해부터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의 일부 수입품에 최고 50%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산 일부 제품도 대상이다. 티후아나를 발판 삼아 미국 시장을 공략하던 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와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관세 부담과 통관 지연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국경을 넘나들기만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는 이런 변화의 향방을 가름할 분수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차단, 마약 밀수 단속, 북미 공급망 재편은 모두 유권자의 관심과 맞닿아 있다. 그 현장이 티후아나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육로로 이어진 이곳에는 미국 입국을 기다리는 난민이 몰려 임시 거주지가 형성되곤 한다. 이들의 체류와 보호를 둘러싸고 당국과 인권단체 간 갈등도 반복된다. 티후아나는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의 주요 밀수 경로이기도 하다. 미국 수사기관과 멕시코 당국의 감시·공조가 집중되는 이유다. 환경 문제도 있다. 열악한 하수처리 시설에서 흘러나온 오염수가 국경을 넘어 샌디에이고 남부 해변을 오염시키는 일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국경 하나에 무역·안보·이민·환경 문제가 겹쳐 있는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추진 속도와 의회의 견제 강도는 달라질 수 있다.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다면 국경 통제와 보호무역 정책에 힘이 실릴 여지가 있다. 민주당이 의회 주도권을 확보해도 공급망 관리와 대중국 견제라는 큰 흐름이 쉽게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 7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현행대로 연장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협정은 유지되지만 원산지 규정 등을 둘러싼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 티후아나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싼 노동력과 국경 접근성에 의존하는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자동차는 북미산 부품 비중과 생산 단계별 요건이 중요하다. 원산지 증명은 서류 한 장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납품업체부터 최종 조립공장까지 추적 가능한 거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통관 규정이 바뀔 때마다 물류 경로를 고치는 임시방편으로는 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기 어렵다. 부품의 출처와 생산 공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달라질 원산지 기준에도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 티후아나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국경을 얼마나 쉽게 넘느냐가 아니라, 그 국경의 규칙을 얼마나 충실히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