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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대미투자, K원전의 마중물 되려면
1200억 달러로 美에 원전 8기 건설
한국형·미국형 모두 사업참여 계획
현지서 쌓은 실적, 제3국 수주 발판
차세대 SMR시장 개척에도 큰 도움
해외 일감 늘지만 전문인력 부족
국내건설 확대로 기술·인재 키워야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한국형·미국형 모두 사업참여 계획
현지서 쌓은 실적, 제3국 수주 발판
차세대 SMR시장 개척에도 큰 도움
해외 일감 늘지만 전문인력 부족
국내건설 확대로 기술·인재 키워야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미국은 수십 년간 대형 원전을 지은 적이 없어 시공 역량이 바닥났다. 유일하게 진행한 보글 3·4호기조차 건설 예산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공기도 7년이나 늦춰졌다. ㎾당 소요 비용만 1만7500달러다. 한국은 중동 사막에 바라카 원전 4기를 납기와 예산에 맞춰 지은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이번 사업 예산은 ㎾당 1만700달러 안팎이다. 원전은 지으면 옮길 수 없어 회수당할 염려가 없고, 운영과 정비 등 후속 사업이 80년가량 이어지는 장기 시장이다.
8기 중 6기는 웨스팅하우스 AP1000, 남의 설계다. 굴욕처럼 보이지만 한 시공 주체가 경쟁 설계 두 개를 한 나라 땅에서 동시에 짓는 것도 세계에서 유일한 일이다. AP1000의 성적표는 보글이 망쳤고 APR1400은 바라카에서 성공을 거뒀는데, 이제 두 유형 모두 미국 땅에서 우리 손으로 지어진다. 성적표는 곧 열쇠다. 세계 어느 발주처의 문도 실적이라는 열쇠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마침 그 두 자루가 하나의 손에 모인 것이다.
계획에 따르면 △1단계 AP1000 2기 △2단계 APR1400 2기, AP1000 2기 △3단계 AP1000 2기 등 순이다. 첫 두 기의 성적이 시장의 평판을 좌우한다. APR1400을 AP1000보다 나은 성적으로 마치면 세계 신규 발주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들 2기는 향후 20기와 200기를 넘어 제3국 시장으로 확대된다. AP1000의 성공 신화만 증명하면 실적은 그 설계자에게 귀속된다. 어느 설계를 주력 상품으로 키울지는 계약서가 아니라 현장이 결정하고, 그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
성공한 대형 설계는 같은 뿌리의 신용으로 이어진다. 소형모듈원전(SMR) 시장은 누구도 준공 실적을 세운 나라가 없는 미개척지다. 세계가 미국 현장의 K-원전을 기억하면 K-SMR의 진입 문턱도 낮아진다. 정부도 최근 송도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장관회의에서 SMR 개발·실증과 글로벌 원전 생산 거점 구상을 내놓았는데, 8기의 현장이 곧 K-SMR의 신용장이다.
이왕 맡은 공사라면 받을 것도 정해야 한다. 첫째, 발주 물량이다. AP1000 6기의 우리 기업 참여는 ‘우선 참여’ 수준이니 최소 물량을 계약서에 숫자로 새겨야 한다. 둘째, APR1400의 조기 실행과 자격 일반화다. 2기가 일회성으로 끝나면 3기는 없다. 셋째,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와 협정 개정 이행이다. 돈을 내는 쪽이 의결권과 농축 권한까지 받아야 동업이지 납품이 아니다.
우리 돈으로 남의 땅에서 공사하지만 평판은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두 자루의 열쇠가 한 손에 모였고, 그 시장의 문을 어느 설계로 열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레토릭이 아니라 첫 콘크리트가 우리의 선택을 기록한다.
열쇠는 쥐는 손이 강해야 돌아간다. 손이 강해지는 길은 인력과 실전이다. 원전의 실력은 현장에서 늘고 끊기면 근육처럼 녹는다. 탈원전 세월에 그 근육도 많이 녹긴 했다. 원자력 관련 학과 재학생은 8년 새 700명 줄었고, 졸업생 568명 가운데 전공을 살려 취업한 이도 110명뿐이다. 필요한 인력은 지금의 세 배라는 계산도 있다. 미국의 8기와 베트남 수주전까지 일감은 쌓이는데 열쇠를 쥔 손이 약하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현장이 필요하다. 국내 신규 원전은 안에서 실력을 지키고 사람을 길러내는 실전 훈련이다. 지금 공론화 중인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대형원전과 SMR을 대폭 반영해 국내 현장을 열어 두자. 2040년까지 대형 원전 19기 분량의 전력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도 있고, 국내 현장이 비면 미국에 보낼 사람과 설비가 충분할 리 없다.
정부는 미국의 8기와 국내 신형 원전·SMR 개발을 한 꾸러미로 묶어 건설 및 인력 확보 계획을 함께 수립하고, 대학과 산업은 그 현장에 나갈 사람을 지금부터 양성해야 한다. 마지못해 내기로 한 돈이라고 할지라도 그 돈이 벌어다 줄 일과 기술, 시장은 끝까지 우리 몫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