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립발레단 양준영
다음달 '카멜리아 레이디'서 주역 데뷔
세계적인 발레스타 알리나 코조카루와 함께
11월 10~15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한 남자가 넘어지는 순간, 계산은 없어야 한다. 다음 동작을 관객이 예측하지 못하도록, 등장인물은 실제로 처음 겪는 일처럼 반응해야 한다. 국립발레단 무용수 양준영(28)에게 존 노이마이어의 드라마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는 그런 역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동작을 반복해 몸에 익히되, 감정만큼은 매번 처음인 것처럼 표현해야 한다.
지난해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아르망과 마르그리트를 연기한 변성완과 조연재. ⓒarte, Photo by 문덕관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아시아 초연에 이어 올해 '카멜리아 레이디'를 1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서 재연한다. 이번 무대에 '아르망'(남자 주역)으로 데뷔하는 양준영을 28일 만났다. 양준영은 이번 공연을 위해 게스트 주역으로 주인공 '마르그리트'를 맡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알리나 코조카루(45)와 호흡을 맞춘다. 양준영은 19세기 파리, 순수한 귀족 청년이 사교계의 매춘부(코르티잔)와 사랑에 빠지고 갈등과 상처를 거쳐 무너지는 과정을 몸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 작품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춘희'에 원작을 두고 있다.
양준영은 지난해 초연 당시 '아르망' 후보군에 있었다. 순서를 비롯해 모든 걸 익혔지만 막판 어깨 부상으로 아깝게 아르망을 놓쳤다. "올해에도 카멜리아 레이디를 한다고 해서, 혹시 모를 기회에 대비해 혼자 연습을 했었어요. 언더스터디라도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캐스팅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달 정기 공연 '지젤'을 2주 앞둔 시점이었다.
발레리노 양준영. ⓒ국립발레단
"파트너가 코조카루라는 게 더 놀라웠어요. 저희 세대 무용수에게 코조카루는 우러러보는 존재거든요. 같은 발레단에 소속돼 있지 않다면, 동년배 무용수가 그와 춤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아요." 김주원 단장은 캐스팅 소식을 알리며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라"는 당부도 건넸다.
아르망을 준비하며 양준영이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과제는 인물의 감정을 어떻게 자연스레 드러내느냐다. 클래식 발레와 달리 드라마 발레에서는 무용수의 이미지와 움직임이 인물의 설득력을 좌우한다. 연기를 잘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신이 맡은 역할과 외모, 춤의 분위기가 어울려야 한다는 고민도 뒤따른다. "안무가 노이마이어께서 제 미숙함까지 받아준 것 같아요. 순수한 긴장감과 자연스러움을요." 양준영이 리허설마다 매번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는 듯 춤추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 동작과 음악의 순서를 미리 알더라도 '아르망'이라는 인물의 반응만큼은 미리 정해놓지 않으려 한다.
카멜리아 레이디 3막 중 블랙 파드되. ⓒarte, Photo by 문덕관
"최근엔 거울만 보이는 곳이 있으면 아르망이 돼 연기 연습을 해요. 얼굴 근육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어떤 표정이 자연스러울지를 봅니다. 화장실에서도 큰 거울이 있잖아요, 30분이 훅 지나가버릴 정도에요."(웃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첫 만남이다. 그는 "첫 2인무(파드되)에서도 아르망의 행동과 말이 마르그리트에게 충격을 안기는 순간들이 특히 좋다"고 했다. 쇼팽의 음악 역시 작품 속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는 통로다. 양준영은 "첫만남을 그린 1막의 음악, 3막의 비극적인 파드되(3막의 블랙 파드되)에 흐르는 음악을 좋아한다"먀 "작품을 준비하면서 평소 즐겨 듣던 J팝 대신 쇼팽을 듣는다"고 말했다.
발레리노 양준영. ⓒ국립발레단
지난해와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준비된 극을 보는 느낌보다 실제로 긴장한 채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을 보는 듯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이마이어께서 무용수에게 자주 강조하는 말도 ‘진짜’거든요. 어제와 그제 연습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번 그 상황을 처음 겪는 것처럼 반응해야 한다고 하세요." 양준영은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공연마다 컨디션의 편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테크닉의 완성도만으로 기억되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관객이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자신을 떠올리는 일이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다시 보고 싶어지는 무용수라면 충분하죠. 예술에서 단 하나의 실패는 작품을 본 사람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때라는 말에 공감해요. 긍정적인 반응이든 부정적인 평가든 상관없어요. 공연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무용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