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와 플랫폼에 이어 은행, 증권사, 코인거래소, 심지어 결혼정보회사와 성형수술 플랫폼에서까지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대한민국이 ‘해킹 공화국’이 되고 있다. 민감한 금융 정보와 연봉, 학력, 결혼 이력, 미용시술 내역 등 사실상 한 개인의 모든 정보가 유출되는 사회라는 인식이 공유된다.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까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해킹에 나서는 시대가 찾아오면서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국내외에서 정보 유출에 대해 사실상 체념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융까지 만연한 해킹

"어차피 내 정보 다 털렸다"…해킹 당해도 무덤덤해진 사람들
28일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빗썸에서 해킹에 의한 정보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이달 들어 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털사에 이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코인거래소까지 공격받으며 금융권 전체로 해킹 사고가 확산했다. 대신증권은 이날 “조사 결과, 현재까지 총 3만8490명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름, 주소, 아이디, 입출금 계좌번호, 휴대폰 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

금융사뿐 아니라 올 들어서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티빙), 기업 회계·인사 관리(더존비즈온), 미용 시술(강남언니) 등 다양한 업종에서 정보 유출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사실상 해킹을 막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전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심화하고 해커 입장에서도 개인정보의 가치가 커지면서 공격이 급증했다”며 “완벽히 막아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AI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이 같은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엔 IT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AI와 독학한 해킹 기술을 이용해 학원·병원·골프장 등 90여 개 업체에서 개인정보 820만 건을 빼돌렸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최근 전 세계를 떨게 한 PHP 취약점도 챗GPT를 통해 발견됐다.

이날 국가안보실이 금융권 연쇄 해킹과 관련해 긴급점검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말까지 170여 개 민간 IT 기반 시설의 취약점을 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는 게 보안업계의 시선이다.

◇“어차피 내 정보 다 퍼졌다”

올 1~8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된 정보 유출 건수는 579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447건을 훌쩍 넘겼다. 해킹 사고가 급증하는 게 한국뿐만이 아니다. 개인정보 도용 피해를 지원하는 미국 비영리기관 ITR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정보 유출 건수는 3322건으로 5년 새 79% 급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인은 정보 유출 피해에 대해 체념하는 현상마저 나타난다. ITRC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보 유출 피로감’(breach fatigue) 현상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에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관 조사에서 피해를 통보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람의 절반(48%)은 “너무 많은 유출 통지를 받아 피로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46%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글로벌 로펌 HSF가 올해 호주에서 한 조사에선 43%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걱정되지만 현대 생활에서 불가피한 위험”이라고 했다. 한 응답자는 “내 개인정보는 이미 다 퍼져 있다”(My data is already out there)고 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쿠팡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3509만1710명으로, 정보 유출 사태가 터진 지난해 11월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대규모 해킹 사고를 겪은 SK텔레콤도 올해 1분기 가입자가 20만8000명 순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워낙 만연해 피할 곳이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