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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투자로 막대한 부를 쌓은 영국 억만장자의 은둔이 소송전으로 끝날 처지에 놓였다. 직원들에게 실명조차 드러내지 못하도록 했지만 베일에 싸인 경영 관여가 법정에서 드러나고 있어서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투자운용사 G-리서치 설립자 피터 드 푸트론(63)이 한 포뮬러원(F1) 레이싱팀 마케팅책임자에게 소송을 당했다. 그는 푸트론이 레이싱팀의 실질적 지배자로 자신의 계약 해지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푸트론의 비밀주의는 유별나다. 투자운용사와 관련 회사 임직원은 그를 ‘A’ 또는 ‘AA’,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를 뜻하는 ‘ODL’로 불렀다. 실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G-리서치 미국 뉴욕사무소 출입증에는 본인 사진 대신 배우 랠프 마치오 이름과 사진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언론과 대중에게 공개된 푸트론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이튼칼리지와 옥스퍼드대, 와튼스쿨을 거친 그는 2001년 G-리서치 전신인 글로스터리서치를 세웠다. 수학·통계모형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금융시장 움직임을 분석해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활용해 매매하는 퀀트 투자가 그의 장기다.

G-리서치 직원은 2023년 공시 기준 약 1000명이다. 운용 규모와 수익률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경쟁사 관계자는 관련 펀드 운용자산을 100억~120억달러로 추정했다.

무대 뒤에서 수익을 계속 올려나갈 것 같던 푸트론은 2022년 시작된 소송으로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 레이싱팀 마케팅책임자는 부당해고,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레이싱팀 모회사와 함께 푸트론 개인을 소송 상대로 지목했다. 푸트론이 흑인과 성소수자 대상 마케팅을 제한하도록 지시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회사는 푸트론을 수동적 투자자라고 설명했지만 법정에서는 예산과 주요 결정에 그의 승인이 필요했다는 전·현직 임직원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욕주 법원도 단순한 외부 투자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증거 확보 과정에서 그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