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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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술업계 억만장자들이 어린이 투자 계좌에 현금과 주식을 넣어주는 기부에 나서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부의 집중으로 부호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가운데 어린이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취지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세제 혜택을 누리는 수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미국 어린이 수백만 명에게 스페이스X 주식을 약 150달러어치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이클 델 델 테크놀로지스 CEO와 부인 수전, 헤지펀드 투자자 레이 달리오 등도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트럼프 계좌’를 지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어린이를 위한 투자 저축 계좌인 '트럼프 계좌'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어린이를 위한 투자 저축 계좌인 '트럼프 계좌'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
트럼프 계좌는 18세 미만 어린이를 위한 개인퇴직계좌(IRA) 형태의 투자 계좌다. 누구나 돈을 넣을 수 있지만 계좌 소유자가 18세가 되기 전에는 인출할 수 없다. 정부는 2025~2028년 출생아에게 1000달러를 지원한다. 어린이들이 성인이 된 뒤 학비나 주택 구입 자금으로 쓸 종잣돈을 마련하도록 돕는 제도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7000만개가 개설됐다.

델 부부는 저소득층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10세 미만 어린이 2500만명의 계좌에 각각 250달러를 주기로 했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한 금액이다.

제도를 구상한 사람은 투자회사 알티미터캐피털의 브래드 거스트너다. 그는 코로나19로 실업과 경제 불안이 커지는데도 증시는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이도 주식시장 성장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이든 행정부에 먼저 제안했으나 진전이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채택됐다.

기부 확대는 기술업계에 대한 여론 악화와 맞물려 있다. 미국 중앙은행에 따르면 자산 상위 0.1%가 보유한 부는 2019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 5월 유고브 조사에서는 미국 성인의 62%가 억만장자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줄어야 한다고 답했다. 갤럽 조사에서 기술 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도 2017년 75%에서 최근 48%로 떨어졌다.

AI의 일자리 대체 우려와 데이터센터 건설 반발, 소셜미디어 부작용도 업계 이미지에 부담을 주고 있다. 미국 최고 부자 10명 가운데 9명이 기술업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자산 기부는 여론 변화와 맞물려 주목받는다.

다만 대통령 이름을 딴 계좌를 통한 기부는 정치적 논란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를 성과로 홍보할 수 있고, 부호들은 백악관과의 관계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선활동 역사 연구자인 올리비에 준즈는 제도 도입과 시행 시점 모두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기존 자선단체를 거치지 않는 기부가 최선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효과적자선센터의 필 뷰캐넌 대표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머스크가 이끈 정부효율부의 지원금 삭감으로 많은 단체가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에게 주식을 주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기부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자에게 돌아가는 세제 혜택도 상당하다. 보스턴칼리지 법학전문대학원의 레이 매도프 교수는 “가치가 크게 오른 스페이스X 주식을 기부하면 매각에 따른 자본이득세를 피하면서 기부액에 대한 소득공제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머스크는 주식 지급 시기와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발표가 실제 자산 이전으로 이어질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