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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들어간 ‘더빙파’ 뜬다…“죽을 똥 싸도 이길래”
'자막파' 일색 K콘텐츠
눈에 띄는 '더빙파'
눈에 띄는 '더빙파'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피지컬 100’ 멕시코판에서 ‘베놈’이라는 참가자의 대사에는 이런 한국어 자막이 깔렸다.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모르더라도 어딘가 심심하다. 과연 다부진 체격에 승부욕 넘치는 남성이 저렇게 점잖게 말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스페인어를 ‘피벗 언어’(매개어)인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순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더빙으로 보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런 표현해서 죄송하지만, 이번 대결에서 ‘죽을 똥을 싸더라도’ 이기고 싶어요.” 원문의 거친 어감과 절박한 감정을 한국어 구어체로 맛깔나게 되살린 것이다.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픽셀로직코리아 녹음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정령 ‘피지컬 100: 멕시코’ 더빙 프로듀서(PD)는 “더빙 번역은 의미를 옮길 뿐 아니라 화면 속 인물의 발화 길이를 고려해 한숨 같은 호흡과 반응도 넣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 연출, 연기, 음향이 결합된 창작 행위”라고 말했다. 단순히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감정까지 옮겨심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더빙파’보다 ‘자막파’가 많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련 소비행태를 파악했던 마지막 해인 2014년 ‘영화소비자 조사’에서 83.7%가 자막을 선호했다. 2022년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 조사에서도 독일(76%)·이탈리아(73%)·일본(46%)와 비교해 한국의 더빙 선호도는 25%에 그쳤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더빙 과정에서 대사가 순화되거나 원작 특유의 말맛이 사라진다는 인식이 그중에서도 크다. 과거 지상파 ‘주말의 명화’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거친 대사도 점잖게 바뀌며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최근 넷플릭스의 한국어 더빙 콘텐츠가 증가하며 이런 고정관념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작품당 평균 10개 언어의 더빙을 제공한다. 작품에 따라 많게는 36개 언어의 더빙을 제작하는데, 최근 한국어 더빙도 애니메이션 같은 장르에서 영화나 드라마·예능 시리즈로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더빙은 자막과 비교하면 제작 단가가 비싼 편이다. 번역된 대사를 문화적 맥락과 발화 시간 등에 맞춰 영상 언어로 다듬어 더빙 PD가 성우들과 이를 연출하면 음향 엔지니어가 호흡, 입 모양과의 일치 여부 등을 조정하는 등 공정이 복잡해서다. 1시간 분량 시리즈 한 편의 경우 녹음만 최소 이틀이 걸리는데, 편집과 최종 음향 믹싱 등을 거치면 작업 기간은 최소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이날 넷플릭스 국내 더빙 협력사인 픽셀로직코리아에서 더빙 시연을 위해 두 명의 성우가 3~4분 분량의 장면 한 컷을 연기했는데, 발음 실수 등 두어차례 NG를 거치며 작업 시간만 20여분이 소요됐다.
적잖은 비용 부담에도 더빙 작업을 확대하는 이유는 콘텐츠 현지화에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K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브라질 등 남미에서도 ‘가족 콘텐츠’로 인기를 끈 배경에는 더빙 선호도가 높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맞춰 스페인어·포르투갈어 더빙이 이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디렉터는 “콘텐츠를 보면서 잠깐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는 등 바쁜 일상에서 이뤄지는 국내 소비자들의 시청 방식과도 잘 맞는 편”이라며 “더빙은 화면의 미장센을 더 자세히 느낄 수 있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이해하기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등 OTT 더빙은 비속어까지 적극 활용하는 등 원작의 현장감을 살리는 데 공을 들인다. 넷플릭스가 작품별 ‘쇼 가이드’를 통해 장면의 연출 의도, 음향 효과 등을 고려하면 현지 더빙 제작진이 이를 현지화하는 것이다. 김 PD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자연스러운 말을 쓰는 방향”이라며 “필요할 경우 성우의 애드리브(즉흥 연기)를 넣기도 한다”고 했다.
글로벌 OTT 시청이 활성화되면서 활동무대가 좁아졌던 성우 등 관련 인력 생태계도 활기를 보인다. ‘피지컬100: 멕시코’에 참여한 박성훈 성우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성우는 약 300여 명”이라며 “최근에는 한국뿐 아니라 한국어 공부 등을 목적으로 해외에서도 시청된다는 얘길 들으면서 한국어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연기를 전달하려 한다”고 했다. 프리랜서 성우 2년 차인 최우성 성우는 “동료들끼리 ‘지금이 성우에게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이야길 한다”며 “처음 걱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