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Why 결정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인데 뜻이 조금 다르게 정의된 ‘회사어’를 만난다. ‘의사결정 사항’이라는 말이 그렇다. 처음 회의에서 “그건 의사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여기서 결정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경했다. 회사 일 중 의사결정이 필요 없는 사항도 있나? 여기서가 아니라면 어디서 결정하나? 그것이 ‘그 사항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누군가’의 결정을 뜻한다는 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던 그 회의가 끝나기 전 알게 됐다.

원칙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는 책임의 크기에 따라 결정 권한이 주어진다. 예산권도 얼마까지는 상무 전결, 그 이상은 전무 전결인 식이다. 일부 관리자를 제외하면 일반 직원에게 회사 업무에 관한 온전한 권한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매 순간 맡은 일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하고, 소통할까. 전체를 책임질 수도, 최종적인 결정을 할 수도 없는 일들이 어떻게 치열하고 소중한 ‘내 일’이 될까?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이유를 붙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Why 결정권’이라고 부른다.

주어진 일, 시켜서 하는 일이라도 그 목적을 이해하고 내 역할의 의미를 찾는 것은 ‘내 일’의 영역이다. 같은 일도 어떤 방식과 호흡으로 풀어갈지는 각자 다르다. 같은 목표를 향해도 어떤 모양의 결과물을 만들게 될지는 저마다의 결정이 쌓여 달라진다. 원칙, 스타일, ‘쪼’를 정하는 것 역시 개인이 가진 권리다. 일의 진행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수 없어도 일을 ‘어떻게’ 할지는 결정할 수 있다.

건강한 조직에는 ‘그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느끼는 구성원이 많은 조직이다. 이 구성원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와 조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과정을 꾸려갈 수 있다. 또 조직과 그 ‘Why’를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도 있다. 이런 감각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개인이 조직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한다.

반대로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고 또 경청할 최소한의 여유가 없는 조직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내 생각이 무의미한 일을 ‘내 일’로 여기기는 어렵다. ‘시키니까’ 하는 일로 가득 찬 조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디로든 움직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지다. 예산권은 필요에 따라 주어진다. ‘Why 결정권’은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