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좋은 기분을 미루지 마세요
무기력이 파고든 주말이었다. 스레드에 그런 마음을 짧게 적었다. 그날 저녁,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해야 할 일은 문제가 터지더라도 다 미뤄두고, 하고 싶은 일부터 먼저 해보세요.” 그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더라”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하루를 많이 쌓아보라고.

돌아보면 하루에는 해야 할 일만 빼곡했다. 보고서, 미팅, 마감, 회신. 해야 할 일 목록은 매일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일 목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늘 다음으로 밀렸다. 그런데 그다음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무기력은 일이 많아서 오는 게 아니다. 그 많은 일 중 스스로 고른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찾아온다.

요즘 젊은 세대는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 큰 성취를 기대하기엔 하루가 너무 길고, 미래는 너무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오늘의 작은 기분부터 챙긴다. 기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인다. 퇴근길 꽃 한 송이, 좋아하는 빵집, 점심 산책. 누군가는 사치나 회피라고 본다. 하지만 하루를 버티기 위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에 가깝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선 이를 기분(feel)과 경제(economy)를 합친 ‘필코노미’라고 정의했다.

심리학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긍정 정서가 생각과 행동의 폭을 넓힌다”고 설명했다. 기분이 좋을 때 사람은 더 많은 선택지를 보고, 더 멀리 시도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고, 낯선 아이디어를 회의에서 먼저 꺼낸다.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으면 시야도 좁아진다. 좋은 기분은 일의 결과물이 아니다. 일을 해낼 수 있게 하는 연료다.

문제는 우리가 배운 순서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자격이 생긴다고 배웠다. 그래서 기분은 늘 뒤로 밀렸다. 그사이 무기력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번아웃을 개인의 체력과 의지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기분을 뒷순위에 두는 문화가 함께 낳은 결과다. 팀장도, 신입도 예외가 없다. 물론 해야 할 일을 관둘 수는 없다. 다만 순서는 바꿀 수 있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먼저 하고, 거기서 얻은 힘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음악 한 곡, 읽고 싶은 책 몇 쪽이면 된다.

좋은 기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만들고 지켜야 할 일이다. 메시지 한 통이 하루의 방향을 바꾸듯, 다정한 권유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그러니 내일 아침엔 해야 할 일 목록보다 먼저 이 질문을 적어보자. 오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몇 개나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