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씨가 2024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검찰청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는 모습 /사진=뉴스1
명태균 씨가 2024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검찰청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는 모습 /사진=뉴스1
여론조사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같은 증거를 두고 1심과 2심이 정반대 결론에 이른 이유는 명태균 씨 진술의 신빙성과,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 자료를 어떻게 읽느냐에 있었다. 특히 항소심에 새로 제출된 통화 녹음과 여론조사 설문지 전송 시점이 쟁점의 중심에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23일 오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1심의 벌금 1000만원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가 가장 무겁게 본 것은 명 씨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재판부는 명 씨 진술을 "유일한 직접증거"라고 짚으며,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 씨 진술이 "전반적으로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 정황과 배치되는 부분도 다수 있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명 씨가 직접 겪은 사실과 과장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명 씨가 불리한 내용은 주변 설명으로 피해 가거나, 앞서 한 진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다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이 명 씨를 고소하겠다고 밝힌 뒤 명 씨가 혐의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신빙성을 낮추는 요소가 됐다. 재판부는 핵심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면, 나머지 진술을 유죄 증거로 쓰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이 판단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명 씨와 김한정 씨의 2021년 3월 통화 녹음이다. 항소심에서 새로 제출된 이 녹취록에서 명 씨는 "하여튼 오세훈이는 몰라요. 모르고,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했다. 재판부는 명 씨가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했다고 한 주장이 이 녹취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녹취에 따르면 김 씨가 명 씨와 인연을 맺은 경로도 오 시장이 아니라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을 통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근거로 오 시장이 김 씨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하라고 요청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명태균 여론조사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명태균 여론조사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시간 순서도 쟁점이 됐다. 명 씨는 2021년 1월 22일 창원을 지나던 중 오 시장이 울면서 여론조사를 부탁하는 전화를 여러 차례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통화 시간과 설문지 전송 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봤다. 설문지는 직원 강혜경 씨가 이미 내부 대화방에 보낸 상태였다. 재판부는 명 씨가 오 시장의 요청과 무관하게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입지를 다지려는 목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만난 지 이틀 만에 오 시장이 불법 비용 부담을 요청했다는 것 자체도 상식에 반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김 씨가 비용을 낸 사실과 오 시장이 요청했다는 사실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가 낸 돈은 조사 건별로 특정되지 않았고, 계좌이체로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해 지급한 점은 은밀한 대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 오 시장과 강철원 전 부시장이 명 씨를 여러 차례 만나 여론조사 결과를 받았고 김 씨가 명 씨 측에 여러 차례 돈을 낸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지시하거나 비용 지급을 요청했다고 증명되지는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1심은 명 씨 진술을 객관 자료와 맞는 부분에 한정해 일부 믿었다. 2심은 그 방식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더라도 검찰이 주장한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검 측은 판결 직후 반발했다. 박노수 특검보는 "재판부에서는 명태균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기준으로 주로 판단했는데, 이 사건을 기소할 때 명태균 진술만으로 기소한 것이 아니다"고 밝히고 상고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냈다.

대법원에서는 항소심의 증거 평가에 법리 오류가 있었는지가 본격적으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