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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털어 반도체 투자하고, 500억 불량품 불태웠다…이건희가 만든 '세계 1위'
이건희 선대회장 6주기…산업·문화에 남긴 유산
반도체 선행투자와 신경영으로 성장 기반 마련
유족 기증 미술품 2만3000여점, 세계 관객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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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기증 미술품 2만3000여점, 세계 관객 만나
불황 속 반도체 투자…20년 만에 메모리 정상으로
하지만 이 선대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선언'을 계기로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그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듬해 3월에는 기흥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마쳤다. 통상 18개월 걸리던 공사를 6개월로 단축했다는 평가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기술 격차를 좁히는 과정에서 택한 것은 '선행투자'였다. 1984년 경쟁사들이 4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확대할 때 삼성은 6인치 웨이퍼로 전환, 1987년 일본 업체들이 반도체 불황으로 투자를 줄일 때도 새 생산라인을 구축에 나섰다. 1990년대에는 8인치 웨이퍼 양산체제를 마련했다.
이런 투자는 기술 개발과 생산능력 확대로 이어졌다.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했고, 이듬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한국반도체에 투자한 지 약 20년 만이었다. 이후 닷컴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차세대 기술 투자를 이어갔다.
500억원 제품 폐기…생산량보다 품질 앞세워
생산 현장에는 불량이 발생하면 원인을 해결할 때까지 가동을 멈추는 '라인스톱제'가 도입됐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진행한 이른바 '불량제품 화형식'은 이런 원칙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품질 기준에 미달한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 규모의 제품을 폐기했다. 이미 생산한 제품의 가치보다 불량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는 원칙을 앞세운 것.
조직을 바꾸는 또 다른 축은 인재 육성이었다. 이 선대회장은 '1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인재론을 바탕으로 국적과 출신에 관계없이 우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0년 도입한 지역전문가 제도는 직원들이 해외에서 언어와 문화, 시장을 익히도록 급여와 교육비, 체류비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에 따르면 당시 비서실이 20여명 선발안을 보고하자 이 선대회장은 규모를 늘리도록 지시했고, 200여명이 해외로 파견됐다.
1993년 7월 도입한 '7·4제'도 업무 방식과 인재 육성을 함께 바꾸려는 시도였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도록 해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퇴근 후에는 어학과 자기계발에 시간을 쓰도록 했다. 기술 변화에 대한 관심도 하드웨어에 머물지 않았다. 이 선대회장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제조업과 결합할 가능성에 주목했고, 1990년대에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수록 창조적인 일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개인의 수집에서 공공의 자산으로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비롯해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의 작품이 포함됐다. 모네와 피카소 등 해외 거장의 작품도 기증됐다. 서울에서 시작한 기증품 전시는 광주와 대구, 청주, 제주 등 전국으로 확대됐다. 삼성에 따르면 국내 순회전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었다.
해외 전시는 한국 미술을 알리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시작한 국외 순회전은 올해 3월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이달 1일 영국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영국박물관이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을 여는 것은 1984년 이후 42년 만이다.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서화, 근현대미술 등을 통해 2000년에 걸친 한국 예술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