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모습 / 사진=연합뉴스
# 서울 마포구에서 전세로 거주하는 강씨(38)는 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2억원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강씨는 추가 보증금을 내는 대신 인상분을 월세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보증금은 그대로 맡겨둔 채 매달 임대료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살던 전셋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월세를 새로 부담하는 계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세를 월세로 바꿔 갱신한 계약 가운데 상당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은 채 매달 임대료를 추가로 내는 조건이었습니다. 전세 매물이 부족하고 보증금 마련도 어려워지면서 이사하지 않아도 고정 주거비가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올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자료 18만1509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갱신계약은 8만2680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종전 보증금이 있고 종전 월세가 0원으로 기재된 계약은 4만8845건이었습니다.

이들 계약 중 갱신하면서 월세가 새로 생긴 사례는 3726건으로 7.6%를 차지합니다. 종전에는 보증금만 맡기고 살다가 계약을 연장하면서 매달 임대료를 내는 방식으로 바뀐 계약입니다.

월세 전환이 보증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증금을 그대로 유지한 계약이 2538건으로 전환 계약의 68.1%였습니다. 보증금을 올리면서 월세까지 새로 내기로 한 계약도 505건이었습니다. 두 유형을 합하면 3043건으로 전체 전환 계약의 81.7%를 차지합니다. 보증금을 낮추면서 월세로 바꾼 계약은 683건이었습니다.

전세를 월세로 바꿔 갱신하는 비중도 높아졌습니다. 종전 전세로 확인되는 갱신계약 가운데 월세로 전환된 비중은 1분기 6.8%에서 2분기 7.8%, 3분기 8.1%로 올라갔습니다. 계약과 신고가 진행 중인 10월은 분기 비교에서 제외했습니다.

개별 단지에서는 보증금 수억원을 그대로 맡긴 채 매달 100만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하는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관악구 신림동 '힐스테이트뉴포레' 전용면적 59㎡는 지난 7일 보증금 5억2500만원, 월세 120만원에 갱신계약을 맺었습니다. 신고된 종전 계약은 같은 보증금에 월세가 없는 전세였습니다. 보증금 변동 없이 연간 1440만원의 월세 지출이 새로 생기는 셈입니다.

성북구 종암동 '래미안크리시엘' 전용 84㎡도 지난 21일 보증금 4억3500만원을 유지하면서 월세 10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갱신됐습니다. 종전 월세는 0원이었습니다. 새 계약기간은 오는 12월부터 2028년 12월까지로 계약이 시작되면 매달 임대료를 부담하게 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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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보증금이 낮은 서울 외곽에서도 같은 형태의 계약이 나왔습니다. 노원구 하계동 '청솔(시영7)' 전용 59㎡는 지난 7일 보증금 2억6000만원에 월세 55만원으로 갱신됐습니다. 종전 보증금은 같았고 월세는 없었습니다. 새 계약이 시작되면 연간 660만원을 추가로 냅니다.

같은 구 상계동 '상계주공11단지' 전용 59㎡도 지난 8일 보증금 2억1000만원을 그대로 두고 월세 50만원을 새로 내는 조건으로 갱신됐습니다. 보증금 규모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연간 600만원의 임대료 부담이 생긴 것입니다.

올해 보증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바뀐 갱신계약 2538건 중 새로 부담하는 월세가 50만원 이상인 계약은 443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00만원 이상인 계약도 9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재계약 때 새로 월세가 붙는 배경으로는 기존 계약과 현재 전세 시세의 차이가 꼽힙니다. 계약기간에 전셋값이 오르면 다음 계약 조건을 협의할 때 보증금 인상 요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입자가 추가 보증금을 한꺼번에 마련하기 어려우면 기존 보증금은 유지하고 인상분을 월세로 나눠 내는 방식으로 조건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집으로 옮겨 부담을 줄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세 매물이 부족한 데다 새로 계약할 집의 보증금도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이나 자녀 학교 때문에 생활권을 유지해야 하는 세입자라면 이사할 집의 보증금과 이사비·중개보수까지 함께 따져야 합니다. 이런 비용을 고려해 기존 집에서 월세를 추가로 내며 거주를 이어가는 방안을 검토하게 됩니다.

집주인의 정기적인 임대수입 선호도 맞물립니다. 세입자는 당장 마련해야 하는 목돈을 줄이고, 집주인은 보증금을 더 받는 대신 매달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합의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목돈은 계속 맡겨둔 채 매달 지출이 새로 생길 수 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에 세입자의 자금조달 제약과 집주인의 월세 선호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전셋값이 오르면서 추가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가 기존 보증금을 유지하고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당장은 추가 목돈 부담을 피할 수 있지만 매월 고정 주거비가 늘어 가처분소득과 저축 여력이 감소한다"며 "장기적으로 내 집 마련 시기가 늦어질 수 있고, 소득보다 주거비가 빠르게 오르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월세 지원뿐 아니라 전세 공급을 확대하고 시장에 나오는 임대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며 "실수요자의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안도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