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사회 갈등 키우는 계약갱신청구권
자기 집에 들어가 1년 넘게 살았는데도 옛 세입자에게 3000만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면 어떨까. 지난달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이 확정됐다. 집주인은 다른 보유 주택(다가구)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살던 아파트를 다시 전세로 내놨지만, 법원은 이를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제3자 임대가 허용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의 법리적 타당성과 별개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집주인은 입주해 살았는데도 이후 사정이 생겨 다시 세를 놓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세입자는 이사 나간 뒤에도 옛 집주인이 계속 거주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계약갱신청구권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게 한 것이다.

집주인·세입자 간 다툼 급증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한 차례 계약 연장을 요구해 최장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대료 인상률도 원칙적으로 5% 이내로 묶인다. 전셋값 급등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을 낳을 소지가 다분해졌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실거주 등 법에서 정한 사유를 충족해야 한다. 대법원은 2023년 집주인이 단순히 실거주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22년에는 집을 매수한 새 주인이 기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지를 놓고 대법원까지 간 소송전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와 주택 매매, 계약 종료 후 사정 변경에 이르기까지 법 적용의 세부 기준이 법원에서야 확정된 셈이다.

계약 갱신 관련 분쟁은 올 들어 다시 급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계약 갱신·종료 관련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13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건)의 두 배를 넘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서도 주택임대차 분쟁 조정 신청 건수가 2022년 621건에서 작년 983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 999건이 접수됐다.

실거주 재임대 기준 마련해야

누구든 시간에 따라 경제적 사정과 형편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이런 변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집주인은 입주 후 2년간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시 세를 놓는 일이 없을지 노심초사해야 할 판이다.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재임대가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손해배상을 면책받을 수 있다.

물론 일부 집주인의 편법적인 갱신 거절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집주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뒤 사정이 달라졌을 때 어떤 경우에 재임대가 허용되는지 더욱 명확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도 하급심에선 판단이 엇갈릴 만큼 다툼의 여지가 많다. 법률의 불확실성을 당사자 간 소송과 법원에만 맡겨둬서는 곤란하다.

좋은 제도는 한쪽의 권리만을 지켜주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끊임없이 다투고 반목하게 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