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데스크 칼럼] 사회 갈등 키우는 계약갱신청구권
이호기 오피니언부장
판결의 법리적 타당성과 별개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집주인은 입주해 살았는데도 이후 사정이 생겨 다시 세를 놓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세입자는 이사 나간 뒤에도 옛 집주인이 계속 거주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계약갱신청구권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게 한 것이다.
집주인·세입자 간 다툼 급증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한 차례 계약 연장을 요구해 최장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대료 인상률도 원칙적으로 5% 이내로 묶인다. 전셋값 급등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을 낳을 소지가 다분해졌다는 점이다.집주인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실거주 등 법에서 정한 사유를 충족해야 한다. 대법원은 2023년 집주인이 단순히 실거주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22년에는 집을 매수한 새 주인이 기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지를 놓고 대법원까지 간 소송전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와 주택 매매, 계약 종료 후 사정 변경에 이르기까지 법 적용의 세부 기준이 법원에서야 확정된 셈이다.
계약 갱신 관련 분쟁은 올 들어 다시 급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계약 갱신·종료 관련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13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건)의 두 배를 넘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서도 주택임대차 분쟁 조정 신청 건수가 2022년 621건에서 작년 983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 999건이 접수됐다.
실거주 재임대 기준 마련해야
누구든 시간에 따라 경제적 사정과 형편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이런 변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집주인은 입주 후 2년간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시 세를 놓는 일이 없을지 노심초사해야 할 판이다.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재임대가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손해배상을 면책받을 수 있다.물론 일부 집주인의 편법적인 갱신 거절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집주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뒤 사정이 달라졌을 때 어떤 경우에 재임대가 허용되는지 더욱 명확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도 하급심에선 판단이 엇갈릴 만큼 다툼의 여지가 많다. 법률의 불확실성을 당사자 간 소송과 법원에만 맡겨둬서는 곤란하다.
좋은 제도는 한쪽의 권리만을 지켜주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끊임없이 다투고 반목하게 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