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6일 경기 부천시 한 금속 도장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동료 부상으로 슬퍼하는 소방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6일 경기 부천시 한 금속 도장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동료 부상으로 슬퍼하는 소방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순직 소방관 빈소에서 사과했지만 사과 표현을 두고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도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서 노후 소방차 교체 등 소방 예산 34억5000만원을 감액한 사실도 드러났다.

19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 8월 도의회에 제출한 추경안에서 노후 소방차 교체 예산 26억5000만원, 전문구급장비 보강 예산 4억원, 구조장비 보강 예산 3억원, 순직 소방관 추모 행사비 1억원 등 모두 34억5000만원을 감액했다.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이라는 추 지사의 해명과 달리, 정작 현장 장비와 순직자 예우 예산은 깎은 셈이다.

추 지사는 17일 경기 부천 순천향대 부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진석 소방위(44)의 빈소를 찾아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실수"라며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해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현장에서는 일부 소방관이 "사진 찍으려고 왔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김 소방위는 지난 16일 부천의 한 금속부품 도장 공장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다가 중태에 빠져 이튿날 새벽 숨졌다. 퇴근을 20여 분 앞두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섯 살 딸이 있다. 이날 화재로 소방관 5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으며, 정부는 고인을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발언 후 침묵…화재 현장선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

추 지사의 사과는 발언 나흘 만에 나왔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소방 예산은 국비 지원 확대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답했다. 이어 소방 인건비만 2027년에 1조1000억원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

발언 영상이 SNS로 확산하면서 양대 노총 소속 소방노조가 모두 성명을 내고 사과를 요구했다. 경기도는 14일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소방 재정 대부분을 부담하는 구조를 지적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추 지사는 이틀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화재 당일인 16일에도 사과는 없었다. 추 지사는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화재 발생 약 3시간 만인 오전 11시2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추 지사가 격려의 말을 건네는 동안 일부 소방관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취재진이 '빨대' 발언에 대한 소방노조의 반발을 묻자 추 지사는 질문을 끊고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했다.

추 지사가 침묵하는 사이 민주당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용우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추 지사의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추 지사의 직접 사과는 그다음 날에야 나왔다.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당 내부 자성론…야당 "진짜 재정 빨대는 추미애"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 일부 권리당원은 추 지사의 출당을 요구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앞으로 당 소속 공직자의 부적절한 발언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깊은 숙의를 거쳐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정성호 의원은 17일 SNS에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를 인용하며 "말의 본뜻이 그게 아니라고 해명할 일이 아니라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먼저 하는 게 도리"라고 했다.

야당은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추 지사는 12억원 관사에 들어가고 새 차를 샀다"며 "진짜 재정 빨대는 추미애 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추 지사는 앞서 13일 국정감사에서 관사·관용차 논란에 대해 "관사는 전세 계약이어서 호화·사치로 보기 어렵다"며 "관용차는 전임 지사가 매입 결정을 한 것이며 친환경차 도입으로 유지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남이 하라고 해서 하는 사과는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며 "자신의 언행이 소방공무원의 자긍심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스스로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경찰은 화재가 난 금속 공장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상·업무상실화 혐의로 입건한 뒤 금속 세척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불꽃이 옮겨붙어 불이 났을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