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서 회사의 향후 성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신사업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누구에게 일을 맡기시겠습니까. 역량이 비슷하면 아무래도 전에 비슷한 일을 해본 직원에게 마음이 기울 겁니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관리자라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죠. 그런데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기회를 얻은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계속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주지 말라, 실패할 권리를 줘라” [직장인 토요책방]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을 지낸 윤여순 리더십 코칭 전문가는 신간 <절반을 깨우는 시간>에서 이런 문제를 짚습니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특혜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기회라는 겁니다. 능력에 따라 일을 맡기고, 성과로 평가하며, 실패할 권리까지 똑같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직원의 절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이 치열한 경쟁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을지 묻습니다.

윤여순은 2000년 여성 최초로 LG그룹 임원에 올랐습니다. LG인화원 상무와 전무를 거쳐 LG아트센터 대표를 지냈습니다. 퇴임 후에는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코칭을 하며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중간관리자, 여성 리더를 만났습니다. 책에는 이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여성의 경력 개발과 리더십에 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여성 직장인보다 그들을 이끄는 남성 관리자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업무 역량이 높아졌는데도 기업의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여성 개인의 능력이나 의욕 부족에서만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남성 관리자들이 모두 여성 직원에게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여성은 감정적이다'라는 편견도 작용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이미 해본 사람’, ‘바로 이해하는 사람’을 선택할 뿐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동안 누구에게 중요한 일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느냐에 있습니다. 저자는 리더십이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먼저 호출되는 사람, 실패한 뒤에도 다시 기회를 얻는 사람이 결국 리더로 성장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특혜가 아니라, 명시적 초대”라고 강조합니다. 막연히 여성도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리자가 직접 기회를 주고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 대우할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같이 골프를 치면서 친해지고, 같은 용어로 대화하는 사람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기회를 몰아준다면 회사도 경쟁력을 잃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주지 말라, 실패할 권리를 줘라” [직장인 토요책방]
책에는 여성 인재의 잠재력을 활용해 성과를 낸 기업의 사례도 등장합니다. 급성장한 금융 스타트업 T사는 ‘인재의 밀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기보다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조직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가.’ 성별이 아니라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얘기입니다.

저자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강한 추진력과 빠른 결단력이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구성원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감성 지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한 증권사 남성 직원의 경험이 눈길을 끕니다. 남성과 여성 본부장을 모두 상사로 모셨던 그는 여성 리더들의 강점으로 타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꼽습니다. “더 다양한 보살핌의 영역을 책임져온 경험은 이들에게 타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길러줬다”는 겁니다. 상황에 맞춰 의사결정을 내리고 객관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경향도 언급합니다.

한 기업의 창업주 역시 비슷한 경험을 들려줍니다. 남성 직원들이 ‘큰 문제 없습니다’라고 보고할 때 여성 직원들은 법적 문제나 소비자의 수용 가능성, 내부 절차의 공정성 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겁니다. 뷰티 기업 한 부사장의 사례를 들어 익숙함 대신에 더 나은 방향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힘이 있는 사람, 고객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일하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니 "여성들이 남아있더라"고도 전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이 조직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GettyImage
GettyImage
물론 책이 남성 관리자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직원들에게도 따끔한 조언을 건넵니다. 맡은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고려하지 않다보니 주변에 적이 많다고도 지적합니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스폰서’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멘토를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멘토와 스폰서는 다릅니다. 스폰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후배가 중요한 업무를 맡거나 승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입니다. 저자는 여성에게 멘토는 있어도 스폰서는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자는 출산과 육아 등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여성 롤모델을 의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후배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리더를 만들고, 중요한 업무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던 역량을 끌어내자는 얘기입니다.

'편한 대로만 뽑아서는 회사에 미래가 없다.' 50대 남성이라는 한 기업 대표가 저자에게 이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이미 해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당장의 성과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번, 그 다음번, 10년 뒤에 일을 맡길 사람까지 생각한다면 답은 달라질지 모릅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