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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가 경제의 병목 되지 않으려면
국내 정치에 갇힌 정책 시야 넓히고
시장 보완할 실행력·전문성 키워야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K정책플랫폼 원장
시장 보완할 실행력·전문성 키워야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K정책플랫폼 원장
정부 경쟁력은 시력과 실력으로 요약된다. 시력은 미래 시공간을 읽고 비전을 설계하는 능력이고, 실력은 그 비전을 현실로 구현하는 역량이다. 시력이 부족한 정부가 이끄는 나라는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고, 실력이 없는 정부가 주도하는 나라는 노 없이 나아가려는 배와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말 초고속인터넷 정책은 두 능력을 함께 보여 준 사례다. 정부는 정보화의 미래를 읽었고, 인프라 투자와 경쟁 촉진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 정책은 이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 보류는 시력 부족의 문제다. 미·중 대결이 심화하는 지금, 공급망과 디지털 통상의 규칙을 논의하는 CPTPP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가입을 미룰수록 규칙 형성에 참여할 기회는 줄고, 남이 만든 규칙을 받아들여야 할 공산이 커진다. 농수산업 피해라는 국내 비용은 크게 보고 중장기 기회는 작게 보는 불균형한 시력이다.
반도체는 시력을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를 대체 불가능한 전략자산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호황을 이유로 정부가 팹 입지를 정하고 증산을 주문하면, 원가와 인력 경쟁력이 약해지고 다음 하강기에 과잉설비가 남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체 불가능한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그 산업을 대체 가능하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자본시장 개혁도 마찬가지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을 거쳐 미래 성장산업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실행 수단이 지수 목표 설정, 연기금 동원에 기댄 주가 관리, 레버리지 상품의 급속한 확대에 머문다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주가 상승은 성장의 기대를 반영할 수 있지만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한다. 부동산 정책은 시력과 실력을 함께 돌아봐야 한다. 다양한 수요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실수요자와 1주택자는 보이지 않고 투기 수요만 보인다면 편향된 시력이다. 국민의 부담을 키우는 세금만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부담의 크기를 정책의 강도로 착각하고 거래 위축을 시장 안정으로 오인한다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은 시력과 실력 모두에 의문을 던진다. 무작정 세계 최상위 모델의 성능을 추격하는 것은 성공의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투입 예산만을 늘리기보다 AI 주권과 협상력 확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정책을 다시 점검할 기준은 분명하다. 첫째, 목표는 지수나 가격이 아니라 주주 환원과 공급 역량, 전문 인력처럼 구조적 지표로 세워야 한다. 둘째, 개입은 시장을 대체하지 않고 보완하는 자리에서 해야 한다. 셋째, 비용과 편익은 단기 국내 정치가 아니라 중장기 대외 경쟁의 잣대로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일은 전문성이 검증된 인재에게 맡겨야 한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고 해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호에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정확한 나침반과 힘찬 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