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1 대 1이 말해주지 않는 것
올해 처음 도입된 의대 지역의사제 전형은 458명 모집에 5076명이 지원해 1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면허를 따고 10년을 그 지역에서 일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는데도 지방 의대에서는 의무복무가 없는 지역인재전형보다 경쟁률이 높았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반도체산업은 역대급 호황을 맞았고 관련 학과도 주목받았지만, 고3 교실의 선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의대 광풍’이라고 부르며, 의사가 돈을 많이 벌어서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동네의원은 해마다 1000곳 넘게 문을 닫고 소아청소년과는 여는 곳보다 닫는 곳이 많다. 그런데도 의대로 가는 학생과 학부모는, 필자가 보기에 지극히 합리적이다. 반도체 호황은 기업 실적과 주주 계좌에는 반영되지만, 엔지니어 한 사람의 30년 뒤 일자리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의사 면허는 수입이 줄어도 굶지는 않는 소득의 하한선을 지켜준다. 상한이 낮아질수록 하한의 값은 오른다.

물론 모두가 하한선만 보고 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자체에 매료된 학생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 마음조차도 온전히 아이의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초교생을 상대로 ‘의대반’을 운영하는 학원이 전국에 89곳이라는 시민단체 조사가 2년 전쯤 있었다. 아마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아이가 제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답을 정해 놓는다. 부모도 내 아이의 하한선은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11 대 1도 같은 눈으로 읽어야 한다. 10년 의무복무가 붙은 자리에 5000여 명이 몰린 것은 의대라는 하한선이 그만큼 단단해서다.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별 편차다. 호남권이 13.35 대 1로 가장 높았고 강원권은 8.02 대 1, 제주권은 4.65 대 1에 그쳤다. 이는 ‘내가 10년을 살 만한 곳인가’에 대한 답안이다. 정부는 늘어나는 정원을 전부 지역의사로 뽑겠다고 하니, 증원 정책 전체가 여기에 걸린 셈이다.

바람은 씨앗을 멀리 옮기지만,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땅이다. 학비를 되돌려줘도 의무는 풀리지 않고 어기면 면허가 취소되니, 10년은 제도가 붙잡아 둔다. 진짜 시험대는 그 의무가 끝나는 11년째다. 그때 458명 중 몇 명이 지역에 남을지, 벌써 걱정이다. 지금 강조해야 할 것은 10년을 묶어 두는 의무 조항이 아니라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수련의 질이다. 의사는 대체로 배운 곳에 남는다. 지역의사제가 지역 수련을 의무화한 것은 그래서 옳지만, 배운 곳에 남는 것은 제대로 배웠을 때의 이야기다. 중증 환자도, 가르칠 선배도 부족한 병원에서의 10년은 경력이 아니라 공백으로 남고, 그 의사는 의무가 끝나는 날 정착이 아니라 만회를 위해 떠난다.

둘째는 삶이다. 의사는 혼자 오지 않는다. 배우자의 일자리와 아이의 학교, 부모의 병원이 함께 온다. 10년이면 초교에 입학한 아이가 고교생이 되는 시간이다. ‘내 아이만은 서울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착은 끝난다. 의사 한 명을 지역에 묶어 두는 정책은 있어도, 그 가족을 지역에 살게 하는 정책은 없다. 지역의사제는 보건복지부만의 일이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 그 자체가 돼야 한다.

바람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어디로 불게 할지는 정할 수 있다. 올해 그 바람이 씨앗을 지역에 떨어뜨렸고, 이제부터는 땅의 몫이다. 의무복무의 10년은 정책이 만들지만, 그 뒤의 30년은 지역이 만든다. 이 제도의 성적은 올해의 경쟁률이 아니라 2040년대에 이 학생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로 매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