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그 어떤 과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창출해내는 메커니즘입니다.”

미국 전쟁부(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스티븐 윈첼 국장은 지난 5월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열린 지리공간정보(GEOINT)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실패 예찬론을 펼쳤다. 윈첼 국장은 “DARPA에서 실패는 프로그램이 잘못 설계됐다는 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DARPA는 1958년 옛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자 “다시는 소련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등연구계획국(ARPA)을 확대 개편한 기관이다.

DARPA가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내건 구호는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배워라(fail fast, learn faster)’다. 이런 정신으로 인터넷의 모태인 아르파넷과 레이저 탐지 시스템을 피할 수 있는 비행체(스텔스기) 개발, 선명한 지구 전체 위성사진 촬영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윈첼 국장이 이날 성공의 필수 관문으로 제시한 실패 목록은 한둘이 아니었다. 인간의 피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물질이 대표적이다. 수십 년이나 연구를 지속했지만, 인공혈관 내 헤모글로빈이 혈관 내 일산화질소를 흡수해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최근이다.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서 헤모글로빈을 지방으로 감싸 실제 적혈구와 비슷하게 만들어 독성을 없애는 데 성공해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윈첼 국장은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온 보관 가능한 혈액을 개발하는 길이 열렸다”고 자평했다.

인공지능(AI)도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하며 붙들고 있던 난제 중 하나였다. 군사 AI 전문가인 윈첼 국장은 2018년 DARPA가 AI 분야에 20억달러를 투자해 시작한 130개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이 포트폴리오 중 상당수는 실패했지만 “현재 상업 및 국방 분야를 재편하고 있는 기술 역량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국가 간 우주 경쟁은 DARPA의 실험 범위를 한층 넓혔다. DARPA는 급격히 늘어난 인공위성을 보수하기 위해 로봇 팔을 장착한 정비로봇 위성을 이달 말 처음 발사할 예정이다. 소행성을 포획해 우주 자원 채굴을 본격화할 수 있는지 타진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윈첼 국장은 “어떻게 실패할지는 알 수 없고, 그 실패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황을 수용해 주는 상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고 이를 포용하고 축하해 주는 팀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패 밥먹듯 하는 美 연구소…트럼프는 왜 50억달러 쏟아부었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기초과학 예산을 대폭 삭감했지만 DARPA 재원은 예외로 뒀다. 트럼프 정부는 2027회계연도 예산안에서 DARPA 예산을 50억3940만달러로 책정했다. 지난해 정규 예산보다 16.6% 늘려 의회에 보고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