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가려진 저성장 그림자…잠재성장률 제고 시급"
올해 ‘반도체 초호황’이 장기 저성장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40년대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반도체 호황을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경제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니어재단,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한국 경제: 지금 서 있는 곳, 가야 할 길’ 경제포럼에서 김미루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지난 30년간 추세적으로 하락한 한국경제 잠재성장률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2040년대에는 0%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 여력이 감소하는 원인으로 기술 혁신 둔화와 생산성 하락을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 하락은 생산성이 줄어든 데서 비롯됐다”며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 공급 축소도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장동력 약화는 한국 경제 주력인 제조업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한국 산업 부문의 생산과 수출은 2010년부터 둔화했고 2011~2025년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한 산업 부문 수출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며 “석유화학과 철강, 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서는 최근 수년간 설비 가동률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경쟁력 약화는 세계 수요의 구조적 둔화에 더해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설비가 과잉 확충된 영향”이라며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 산업 경쟁력이 정체 또는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반도체 호황은 이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학자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 정비와 정책의 일관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와 의무가 급격히 늘어나는 이른바 ‘규제 문턱’을 점검해야 한다”며 “기존 사전 규제는 유지한 채 사후 제재를 추가하는 ‘규제 누적’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면 경제주체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시장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투자와 장기 계약을 위축시킨다”며 “정책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