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사이에서 로블록스가 힐링 게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왼쪽부터 유튜브 ASMR 채널 '포근픽셀' 영상, 인스타그램 갈무리
2030 사이에서 로블록스가 힐링 게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왼쪽부터 유튜브 ASMR 채널 '포근픽셀' 영상, 인스타그램 갈무리
"퇴근하고 애들이랑 왁뿌맵에서 만나서 논 지 꽤 됐어요."

직장인 유승언 씨(30·여성)는 최근 '초통령'으로 불리는 글로벌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빠졌다. 왁뿌볼 블록을 밝으면서 탑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게임을 즐기거나, 가상 공간에서 사우나를 즐길 때도 있다. 커스터마이징한 아바타로 친구들과 네컷사진을 찍거나 사이버 초밥 먹방을 하기도 한다. 유씨가 만나는 '애들'은 초등학생이 아닌 2030 성인 친구들이었다.

초등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로블록스가 2030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게임에서 이기거나 높은 점수를 얻는 대신, 가상세계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각종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 성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힐링법'으로 소문이 나면서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성인 이용자들의 플레이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게임에서 사용되는 이모지를 활용한 챌린지도 밈으로 번지고 있다.

20대 이용자 41% 늘었다…SNS 타고 성인도 유입

/사진=유튜브 갈무리
/사진=유튜브 갈무리
12일 앱·결제 데이터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로블록스 앱의 국내 20대 이용자는 월간활성이용자(MAU) 기준 지난해 9월 90만4880명에서 올해 9월 127만8789명으로 약 41.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10대 이하 이용자는 248만3594명에서 239만9746명으로 약 3.4% 소폭 감소했다.

검색량에서도 2030의 관심도가 두드러졌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네이버에서 '로블록스'를 가장 많이 검색한 연령대는 20대로 34.5%의 비중을 차지했다. 30대가 25.3%로 뒤를 이으면서 두 연령대를 합친 비중은 59.8%를 기록했다. 연령대 검색 비중 절반 이상이 2030인 것이다.

로블록스는 코로나19 시기, '메타버스 대장주'로 각광받았던 플랫폼이다. 다만, 메타버스 열풍이 사그라지며 초등학생들만 즐기는 '초통령' 게임으로 그치는 듯하다, 최근 2030 유입이 늘어났다. SNS 영향이다. 올해 로블록스 게임 스트리머 '밤으깡'의 '내 로블록스 베프는 10살'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면서 2030 팬덤이 생겼고, 이후 왁뿌타워, 로블록스 클럽 등 로블록스 내 게임 자체를 콘텐츠로 삼는 스트리머가 늘어났다. 유튜버들도 유입됐다. 유튜버 침착맨, 고재영 등도 로블록스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조회수 80만~90만을 기록했다.

클럽도, 사우나도, 먹방도 가상공간에서…경쟁보다 '힐링'

2030이 로블록스에서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클럽맵을 즐기고 있다. /영상=침착맨 유튜브 계정 갈무리
2030이 로블록스에서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클럽맵을 즐기고 있다. /영상=침착맨 유튜브 계정 갈무리
2030은 로블록스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데 집중했다. 만 16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 로블록스 클럽 '미드나잇 플라자' 맵이 대표적이다. 유흥 공간으로 인식되는 현실 클럽과 달리, 로블록스에서는 네모나고 동그란 아바타로 꾸며진 캐릭터들이 무아지경으로 춤추는 것이 끝이다. 노래에 맞춰 버튼을 누르고, 춤추면 된다. 올해 1월에 개설된 해당 맵은 누적 방문자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SNS에는 "무해하고 귀엽다", "현실 클럽 다닐 필요가 없다. 로블록스에 다 있다" 등의 반응이 나올 정도다.

로블록스가 2030 이용자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이용자 생성 콘텐츠(UGC) 영향이 크다.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직접 게임 맵을 만들 수 있어 '게임판 유튜브'로 평가받는다. 왁뿌볼 ASMR, 사우나 등 2030 사이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가상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다. 특정한 승패를 겨루는 게임뿐 아니라 현실의 활동을 모방하거나 감각적 만족을 얻는 공간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씨는 "왁뿌볼은 하나에 5000원이라 비싼데, 가상이지만 로블록스에서 무한으로 깨트리면서 소리도 즐길 수 있어서 책임감 없는 쾌락, 일명 '책없쾌'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전문가는 2030이 로블록스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현상을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관계 문화로 해석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 소통에 익숙해진 세대가 바쁜 일상과 시간적·경제적 제약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어려울 때 온라인 공간을 통해 관계를 이어간다는 설명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비용과 수고가 필요한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을 대체재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밀도감이 상대적으로 얕은 온라인에서의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로블록스 측은 2030 유입을 인지하고 반겼다. 리차드 채 로블록스코리아 대표는 "최근 로블록스는 2030세대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용자들이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즐기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사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다양한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로블록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