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봉의 호모 인베스티쿠스] 주식을 샀더니, 세계가 딸려왔다
최근 한국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주식 채널과 세계사 강의가 이웃처럼 지낸다.

한쪽에서는 어떤 종목을 얼마에 사서 언제 팔아야 할지, 내일 미국 증시가 오를지 내릴지를 다루는 주식 영상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바로 옆 추천 목록에는 중동의 종파 전쟁, 슬라브 민족의 해묵은 갈등, 풍요롭던 남미 산유국이 몰락한 비화, 이름도 생소한 해협과 무역로를 다룬 세계사 콘텐츠가 줄줄이 뜬다. 돈을 굴리려는 마음과 먼 나라의 역사를 파고드는 호기심. 두 라인이 서로를 부양한다.

물론 주식을 사고파는 데 필요한 질문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분기 실적은 언제 나오는지, 기관과 외국인의 매매동향은 어떤지, 물가와 금리 추이에 변동이 있는지, 정부 정책 모멘텀은 살아있는지. 복잡한 역사와 지정학적 비극은 결국 화면 위에서 몇 줄의 숫자와 차트로 압축될 뿐이다.

중동의 종교적 뿌리를 안다고 유가의 향방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동유럽 민족사를 꿰뚫는다고 방산주 매수에 대한 확신이 서는 것도 아니다. 돈이 오가는 순간에 필요한 것은 긴 역사가 아니라 선명한 계산이다. 그런데 주식을 쥐고 세계를 마주하는 순간,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진다

조선주를 기웃거리다 북극항로의 얼음 두께를 검색하고, 반도체 뉴스를 보다가 대만해협의 국공내전 역사를 뒤적거린다. 2차전지에 눈을 돌리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리튬 국유화와 볼리비아의 정치 불안을 찾아보고, 자동차주 실적을 좇다가 독일 폭스바겐의 대량 해고와 노조의 반응을 파고든다.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연결돼 있다. 돈이 그 연결을 가장 피부에 와닿게 드러낸다. 그래서 한 번 걸린 호기심은 쉴 줄 모른다. 이슬람과 유대교의 깊은 역사적 관계를 알게 되자 왜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지 궁금해지고,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의 붕괴를 보며 포퓰리즘과 오일 머니의 흥망사를 추적하게 된다. 당초 주가 변수를 확인하려던 계산은 어느새 꼬리를 무는 문명사적 질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사실 이것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은 아니다. 우리가 와인의 산지와 치즈의 숙성을 따져보고, 해외 미술관에서 작품이 놓인 시대와 장소를 궁금해하는 것과도 어딘가 닿아 있다. 세계무대에 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교양에 대한 조바심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식과 교양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주식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지도를 펼쳤다가, 지도에 그어진 선이 궁금해진 것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고 반도체 패권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주식을 쥔 뒤 대만의 지방선거 결과가 전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쇄빙선 수주 뉴스를 접하고 나면 북극의 기후변화가 단지 환경 다큐멘터리의 소재로만 머물지 않는다. 방산주를 살피며 전황 지도를 들여다본 사람에게는 동유럽 소도시의 이름 하나에도 그전과 다른 무게가 실린다.

돈이 세계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돈이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이다.

낮에는 목표주가와 차트를 보며 현실적인 계산을 하고, 밤에는 굴곡진 세계사의 무대를 거닌다. 돈을 불리려는 현실적인 관심과 세계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한 사람의 일상에서 나란히 돌아간다.

주식을 샀더니 세계가 딸려왔다. 돈을 벌려고 들여다본 지도에서, 돈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