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을 뚝딱 찍어내는 대신 '질문하는 방식'부터 연구한다. 마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이식한 것처럼, 국립현대무용단이 철저한 실험과 프로세스 중심의 체질 개선에 나선다.

차진엽 신임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이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3년간의 청사진을 밝혔다. 차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몸을 움직임의 도구가 아닌, 세계와 사회를 탐구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이어 무용단을 완결된 결과물만 보여주는 곳이 아닌 '함께 가꾸는 창작 공동체'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취임한 이래 5개월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차진엽 국립현대무용단장 "몸과 춤으로 세상과 뜨겁게 소통할 것"
차진엽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거쳐 영국 런던 컨템퍼러리댄스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 등지에서 무용수로 활약했다. 귀국 후 국내외 국립, 민간 단체에서 창작활동을 이어온 현대무용가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감독(2018),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폐회식 예술감독(2021) 등을 역임했다.

이날 차 감독의 발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CTP랩(Choreographic Thinking and Practice Lab)'의 도입이다. 차 감독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 몸과 감각, 관계의 변화에 대해 먼저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최우선으로 둔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만들기 전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가설과 질문을 던지고, 그 궤적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의 애자일(Agile) 프로세스와 닮아 있다.

이러한 실험 정신은 내년 6월 추진되는 신규 프로젝트 'ERRORIST(에러리스트)'로 이어진다. 퍼포밍 아츠와 현대무용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불확실성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는다. 완벽한 결과물에만 집착하던 기존의 방식을 깨고, 미지의 영역을 향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 자체'를 자산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온 '레퍼토리의 휘발성'을 치밀한 아카이빙과 시스템으로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공연 프로그래밍에도 균형을 맞췄다. 안무가이기도 한 차 감독의 신작 참여 비율을 20%대로 유지하고 신진, 베테랑 안무가들의 무대를 균형있게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12월 차진엽 감독의 신작인 '빙빙빙(BEING BEING 氷)'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공개된다. 차 감독은 "극장을 벗어나 장소가 품은 시간과 기억을 몸으로 통과하는 파격적인 시도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내년 4월에는 3년 임기 동안 이어질 그의 또다른 신작 '몸·균·살: 아직 마르지 않았다'의 첫 무대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오르며 변화의 불씨를 지핀다.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편견, 그리고 글로벌 안무가들이 컨템퍼러리 발레단을 향하는 최근의 흐름 속에서 현대무용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대해 차 감독 역시 깊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오히려 장르의 외연을 확장할 돌파구로 삼겠다는 포부다. "그렇기에 대중과 만나는 기회를 입체적으로 늘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국립현대무용단은 다음달, 철학·과학·예술·기술 분야와 결합해 몸을 다층적으로 탐구하는 렉쳐 프로그램 'BODYING/BODYING(바딩바딩)'을 연다. 그는 "연습동을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타 장르와 무용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경험하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린이·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젤리 디너', '얍얍얍'의 지역 유통을 확대하고,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신규 사업 '몸커먼즈'를 가동해 생태계의 저변도 넓힌다.

차 감독은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공존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한다"며, "몸과 춤으로 세상과 뜨겁게 소통할 국립현대무용단의 새로운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