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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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벽을 허물고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배우 양자경이 15년 만에 부산을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그는 새로운 도전을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박선영 프로그래머의 소개와 함께 양자경이 참석했다.

양자경은 오랜만에 찾은 부산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그는 "15년이 흘렀다. 정말 멋진 도시고,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3일 전에 도착했는데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오랜 길을 걸어왔다"며 "아시아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나아가며 문화를 전 세계와 나누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여러분 덕분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할리우드 진출 초기 겪었던 뼈아픈 경험과 스펙트럼을 넓혀온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 할리우드에 갔을 때 가장 큰 충격은 마이너리티라는 현실이었다"며 "아시아에서 왔다고 우리를 마이너로 보고, 역할도 주어지지 않은 채 스테레오타입에 갇혔다"고 회상했다.

이어 "'007 네버 다이'로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시아 배우가 소비되는 방식은 한정적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와호장룡'을 할 때 벽을 깼다고 생각한다. 속도를 높여가며 아시아 여성만 할 수 있는 적절한 역할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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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에 대한 비화도 공개됐다. 영화는 사기 혐의로 집을 잃고 양로원에서 지내는 자오(양자경)가 야시장에서 큐브를 선보이는 청년 우유웨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양자경은 작품에 대해 "큐브에 많은 가능성이 있듯이 삶도 마찬가지"라며 "기회가 우리에게 오다가 아니면 문이 닫히기도 하는데, 큐브를 푸는 것은 그런 기회에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출연 당시 주변의 반응을 전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가 '80세 노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니 처음엔 안 좋아하셨다"면서도 "영화를 통해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나이가 많더라도 기회가 발생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상황에서 나를 지지해 줄 절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도전의 의미를 묻자 "사실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건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새 도전을 꿈꾸는 것, 그것이 삶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심장이 뛰고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며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액션과 드라마를 오가며 모든 영화가 다 다르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그런 다채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영화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스틸컷
영화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스틸컷
한국 영화계와 크리에이터들을 향한 러브콜도 이어졌다. 양자경은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을 기대한다"며 관심을 드러냈다. 이어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도 하고 싶고, 정우성 배우를 비롯해 여러 한국 배우들과 작업을 한 적이 있다"며 "K팝, K드라마, 한국 음식 모두 너무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진지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윤여정 배우가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위상이 높아졌다"며 "우리가 오스카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주며,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국 영화가 정말 잘하고 있고 우리가 잘 따라가는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며 "우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할리우드 활동을 거쳐 아시아 마켓과 다시 손을 잡은 의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양자경은 "오랜 시간 미국 영화와 TV 작업을 하다가 친구의 소개로 좋은 방식으로 아시아 마켓으로 돌아올 기회가 생겼다"며 "항상 동서양의 다리를 만들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업을 하길 꿈꿨다"고 밝혔다.

이어 "나이가 많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야기를 기다려왔다"며 "삶은 우리 손에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도전 과제"라고 강조했다.

연출 도전 계획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나는 배우가 좋고 프로듀서도 좋다"면서도 "하지만 멋진 감독이 되기에는 내 개인적인 삶이 없을 것 같다. 이 감독들의 비전이 너무 커서 내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멋진 비전을 가진 감독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좋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양자경은 "나는 매일 아침 항상 영화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영화는 내가 계속 살아있게 하는 힘인 것 같다"며 "스트리밍 플랫폼이 많아졌지만 영화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바깥세상을 완전히 차단하고 삶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고 영화에 대한 헌사를 보냈다.

이어 "내일 뉴욕으로 가서 '블레이드 러너 2099' 프로모션을 시작한다. 멋진 배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새로운 감독들과 작업할 때도 두려움은 없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할 때도 대본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 천재적인 프레쉬함이 좋다. 신진 감독들의 새로운 시각과 리스크를 감당하는 도전 정신을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부산=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