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제2차 월례포럼 / 사진 제공=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미래경제연구센터
온라인 제2차 월례포럼 / 사진 제공=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미래경제연구센터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미래경제연구센터(센터장 이지홍 교수)가 지난 1일 ‘사모펀드와 공정거래정책’을 주제로 제2차 월례포럼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사모펀드를 비롯한 금융기관·재무적 투자자의 인수합병(M&A) 활동이 시장 경쟁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과 기업결합 신고·심사제도의 경쟁정책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가 특정 산업 내 기업을 연속적으로 인수하는 이른바 ‘롤업(roll-up)’ 전략이 시장지배력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미국의 관련 연구와 정책 사례를 바탕으로 경쟁당국이 인수합병의 누적 효과를 포착하기 위한 기업결합 신고·심사제도와 규제체계의 보완 방향을 논의했다.

발제는 사모펀드와 재무적 투자자의 인수합병 활동과 기업결합 신고제도 등 공정거래정책을 연구해 온 토마스 울먼(Thomas Wollmann) 미국 보스턴대학교 퀘스트롬(Questrom) 경영대학 교수가 맡았다.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이자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울먼 교수는 보스턴대학교 퀘스트롬 경영대학 교수이자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으로, 미국의 기업결합 신고 기준에 미치지 않는 소규모 인수가 반복되면서 시장집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스텔스 컨솔리데이션(stealth consolidation)’으로 설명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날 울먼 교수는 미국 마취서비스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여러 기업을 연속적으로 인수한 사례를 분석한 연구 ‘Painful Bargaining: Evidence from Anesthesia Rollups’를 소개했다.

롤업은 사모펀드를 포함한 재무적 투자자가 먼저 한 기업을 인수한 뒤 같은 시장의 기업들을 잇달아 추가 인수(add-on acquisition)해 합병하는 방식이다.

울먼 교수는 “개별 인수 규모가 작더라도 여러 거래가 연속적으로 이뤄질 경우 하나의 사업자가 시장 내 다수 기업을 보유하게 되면서 시장지배력이 높아지고 경쟁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며 “특히 이러한 인수합병 행위는 개별 규모가 작아 기업결합 사전 신고 대상에서 제외돼 규제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울먼 교수는 이러한 연속 인수가 실제 시장의 경쟁구조와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미국 마취서비스 시장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재무적 투자자가 두 곳 이상의 기업을 인수한 18개 시장을 대상으로, 9개 재무적 투자자가 진행한 50건의 추가 인수 사례를 분석했다. 의료보험 청구자료와 의료인·의료기관 및 기업 거래자료 등을 활용했으며, 분석 대상 시장은 미국 인구의 약 4분의 1을 포괄하는 것으로 제시됐다.

분석 결과 최초 기업 인수 시에는 가격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이후의 추가 인수에서는 인수 직후 가격이 약 20~25% 상승하고 이후 약 4년에 걸쳐 상승폭이 40% 수준까지 확대됐다. 반면 서비스 품질의 유의미한 개선은 관찰되지 않았다.

울먼 교수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일부 소규모 기업결합의 경우 가격이 짧은 기간에 30%, 일부 사례에서는 50%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구조적 협상모형(structural bargaining model)을 활용해 경쟁 기업이 줄어들수록 해당 기업의 보험사에 대한 협상력이 높아지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시장집중도 상승폭이 큰 인수일수록 가격 상승폭도 커지는 관계가 나타났다.

울먼 교수는 “기업결합 심사에서도 개별 거래뿐 아니라 인수의 연속성(seriality)과 누적 효과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경쟁당국의 신고 기준에 미치지 않는 인수합병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인수합병이 오히려 더 큰 경쟁 제한 효과와 사회적 후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은 기업결합이 복수의 인수로 구성된 경우 경쟁당국이 일련의 거래 전체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울먼 교수는 개별 거래별 시장집중도 변화만 놓고 보면 경쟁제한성이 크지 않아 보이는 인수도 전체 롤업을 하나의 거래로 평가할 경우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구 대상 50건 가운데 일부는 개별 거래 기준으로는 경쟁제한 추정 기준을 넘지 않았지만 누적 기준으로는 이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기업결합 심사제도에 대해서도 반복적인 소규모 인수의 누적 효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는 “한국의 기업결합 심사기준은 시장집중도의 변화 추세를 고려하고 있지만 미국과 같이 일련의 인수를 하나의 거래 단위로 명시적으로 검토하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며, “신고 기준을 피해 누적되는 소규모 인수의 경쟁제한 효과를 포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심사 가이드라인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재무적 투자자가 주도하는 연속 인수 동기와 투자기간, 기업결합 신고·심사기준, 트럼프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 기조 등이 논의됐다.

울먼 교수는 “사모펀드가 통상 5~7년의 투자기간을 두고 기업을 인수·통합한 뒤 다른 사모펀드에 매각하거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 전체 규모는 크지만 개별 시장은 지역·제품별로 세분화돼 있고 신규 진입이 어려운 경우 롤업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결합 심사에서도 개별 거래 규모뿐 아니라 반복적인 인수 패턴과 전체 시장구조의 변화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성욱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미국 경쟁당국이 사모펀드의 연속 인수 문제를 인식하고 실질적 정책 개선으로 연결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 시장에 맞춘 경제학적 연구와 심사기준 정교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홍 미래경제연구센터장은 “주요 산업의 시장집중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사모펀드의 인수합병 활동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공정거래 규제 체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