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최고 안보 책임자가 7개월 넘게 이어진 미국·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 및 대이란 제재 여파로 자국 경제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음을 이례적으로 공식 인정했다.

5일 뉴욕타임스와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모흐센 레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 참석한 경제 안정화 고위급 회의에서 현재 경제 상황을 "국가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시기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외교·안보 전략을 총괄하는 고위 당국자가 공개 석상에서 자국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 역시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제 악화 상황을 인정하며 "특수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대응 태세를 갖췄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IRNA 통신은 안보회의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란 경제는 지난 2월 군사 충돌이 시작된 이후 미국의 대이란 제재 강화와 해상 봉쇄가 겹치며 급격히 악화했다. 핵심 외화 유입 통로가 막히면서 리알화 가치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지난달 30일 기준 리알·달러 환율은 달러당 256만7000리알까지 치솟았다. 전쟁 직전 달러당 150만~160만 리알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통화 가치가 절반 가까이 급락한 셈이다.

통화 가치 폭락은 수입 물가 상승과 연료난, 생계비 위기로 번지고 있다. 최근 교사와 간호사 등 공공·민간 부문 근로자들의 사직 표명이 잇따르고 있으며, 연금을 전액 지급받지 못한 퇴직 공무원들의 항의 시위도 지속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해상 봉쇄와 함께 민간 항공편을 차단하며 경제적 고립 작전을 펴고 있다. 미국 측은 대치 국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 지도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 재개 등을 지렛대 삼아 미 중간선거 국면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