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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녀들이 오디션 거쳐 'K팝 아이돌'로 데뷔하는 시대 [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14년 동안 글로벌 음악 시장 판도는 지각변동을 겪었다. K팝은 더 이상 아시아 변방의 하위문화(서브컬처)가 아니었다. 빌보드 메인 차트 1위를 밥 먹듯 차지하고, 북미 대형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세계 음악 산업의 가장 뜨거운 성장 엔진이 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서 박진영이 구상한 '다음 수'는 단순한 한국 가수의 미국 투어가 아니었다. 바로 K팝 제작 공식과 트레이닝 시스템을 미국 본토에 통째로 이식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 ‘A2K(America to Korea)’ 프로젝트였다.
A2K의 파트너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Republic Records)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더 위켄드, 드레이크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소속된 미국 1위의 메이저 레이블이다. 과거 문전박대를 당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미국 음악 산업의 정점에 선 기업과 대등한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지분을 나누는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리퍼블릭 레코드의 창업자인 몬테 립먼 최고경영자(CEO)는 박진영과 함께 A2K를 공동 지휘했다. 미국 최대 레이블의 수장이 K팝식 연습생 육성 모델을 북미에 이식하는 프로젝트의 얼굴로 나섰다는 사실은, 서구 음악 산업이 K팝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선이 14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A2K의 기획은 대담했다. 미국 전역 5개 주요 도시(애틀랜타·시카고·뉴욕·댈러스·LA)에서 현지 10대들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고, 발굴된 인재들을 서울 강동구 성내동 JYP 본사로 데려와 한국식 K팝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을 그대로 거치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니쥬(NiziU)’를 통해 완벽히 검증된 ‘Globalization by Localization(현지화를 통한 세계화)’ 전략을 세계 팝의 본산인 미국에 직접 적용한 셈이다.
오디션 과정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며 수천만 뷰를 기록했다. 인종, 체형, 문화적 배경이 제각각인 미국의 10대 소녀들이 JYP 특유의 보컬 발성법, 칼군무, 체력 훈련, 그리고 엄격한 ‘진실·성실·겸손’의 인성 교육을 받으며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개인주의와 자율성이 지배적인 미국 사회에서 K팝 특유의 집단적 규율과 혹독한 연습 과정이 현지 청소년들에게도 통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을 단숨에 불식시킨 순간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 2023년 가을 6인조 글로벌 걸그룹 '비춰(VCHA)'가 탄생했다. 미국인과 캐나다인 등 북미 현지 국적으로만 구성됐지만 그들의 호흡과 군무, 음악적 완성도, 팬들과 소통하는 태도(애티튜드)는 영락없는 정통 K팝 아이돌의 DNA를 품고 있었다. VCHA는 프리 데뷔 싱글 발표에 이어 2024년 정식 데뷔와 동시에 트와이스의 대규모 월드투어 오프닝 무대에 서며 전 세계 수만 관객 앞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A2K 프로젝트와 VCHA의 탄생은 박진영 개인에게는 14년 만에 이뤄낸 완벽한 '미국 시장의 복수극'이자 명예회복이었다. 2000년대 후반 "허황된 미국병에 걸렸다"며 조롱받던 그의 꿈이, 시스템의 혁신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세계 최정상 음반사가 탐내는 가장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지화 그룹이 미국 팝 주류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얼마나 거대한 상업적 폭발력을 낼 것인가는 여전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박진영은 A2K를 통해 전 세계 음악계에 결정적인 선언을 남겼다. K팝은 더 이상 한국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한국이 창조해낸 가장 정교하고 매력적인 ‘문화 제조 시스템’으로서 세계 팝의 종주국 미국마저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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