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무늬만 자율'인 근로조건 자율개선 사업
“자율개선 사업이라면서 거부하면 내년에 근로감독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게 정말 ‘자율’입니까.”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얼마 전 고용노동부의 공문과 공인노무사의 전화를 받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근로조건 자율개선’을 이유로 시행하는 ‘지원사업’이 정작 현장에선 ‘응하지 않으면 근로감독을 받을 수 있다’는 행정 압박으로 변질되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일선 소규모 사업장에 ‘2026년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사업’ 참여를 독려하며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공인노무사가 사업장을 방문해 근로조건을 점검한다는 내용과 함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원 사업을 거부할 경우 차년도(2027년)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음”이라는 경고 문구가 담겨 있었다. 근로감독은 노동법 위반 여부에 따라 시정 지시, 과태료 부과는 물론 수사 및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고강도 행정 조사다.

사업 수행을 담당한 노무사의 전화는 공문보다 훨씬 더 고압적이었다. A씨는 “자율 점검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답하자 노무사가 반복적으로 전화해 근로감독 가능성을 수차례 거론했다”며 “죄 없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검문받으라고 하고 응하지 않으면 정식 수사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억울해했다. 이어 “점검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에 방문해 관련 자료 등을 준비해 보여달라는 것 자체가 영세한 기업 입장에서는 행정 부담”이라고 하소연했다.

근로조건 자율개선 사업은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되 공인노무사 등 민간 전문가가 사업장을 찾아가 근로계약서, 임금대장, 근태자료 등을 점검하고 노동법 준수 상황을 확인하는 사업이다. 2022년 처음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해 7300곳의 사업장을 목표로 삼았으며 총 7297곳을 ‘지원’하는 데 성공했다. 목표 달성률이 무려 99.9%에 달한 것이다. 올해도 6000곳을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과 개선을 유도한다는 정책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자율 정책이라면 사업주를 납득시키되 선택권을 주는 게 먼저다. 그게 아니라면 사전 근로감독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지난 수년간 사업 목표 달성률 99.9%를 이뤘다면 더 큰 문제다.

처음 보는 노무사에게 사업장의 속사정을 대뜸 공개하라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한 공인노무사는 “사업에 참여했다가 문제점이 발견되면 점검한 노무사가 추가 자문 계약을 강요하는 등 이해충돌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율이란 이름이 혹시 ‘행정편의주의’를 덮는 포장지는 아닌지 점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