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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불교’보다 15년 빨랐다...나누고 비우고 채운 산사의 밤
19일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완주 송광사 공연
법진 스님이 15년간 이어온 '나비채 음악회'
"좋은 음악은 나누고, 내 것은 비워 한 끼를 내놓고"
가톨릭 사제의 오르간 연주가 흐르는 천년고찰의 밤
법진 스님이 15년간 이어온 '나비채 음악회'
"좋은 음악은 나누고, 내 것은 비워 한 끼를 내놓고"
가톨릭 사제의 오르간 연주가 흐르는 천년고찰의 밤
최근 유행하는 '힙불교(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 명상과 다도를 젊은 세대와 외국인이 소비하는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유행을 좇아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송광사 주지 백강법진 스님(68)이 오랫동안 묵묵히 이어온 행사이기 때문이다. 절에서 열리는 음악회지만 종교의 경계는 무너진지 오래다. 법진 스님은 "송광사에 신부님이 와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오늘 만찬도 시작 기도는 개신교 목사님이 합니다." '나누고, 비우고, 채운다'는 뜻의 나비채 음악회는 이제 완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음악회의 출발은 2011년, 이름은 '사랑음악회'였다. 법진 스님은 오랜 미국 생활 중 이혼과 가정 해체가 사회문제로 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귀국 후 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가 택한 처방은 음악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을 '사랑의 날'로 정하고, 전국의 이혼소송 중인 불자 부부를 초대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맺혔던 마음이 풀리고, 서운했던 마음도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꼭 예술의전당에 가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에도 야외무대를 만들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사람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음악이 사람의 정서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미국 대학가에서 학생과 지역 주민이 함께 공연을 즐기던 풍경도 기억했다. 사람을 공연장으로 부르는 대신 음악을 사람에게 가져가는 것, 그 경험이 지금의 송광사로 이어졌다.
나눔 다음은 비움이다. 법진 스님이 말하는 비움은 단순한 무소유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완전히 자기 몫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산은 관계 속에서 얻어진 것이잖아요. 잠시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그는 불교의 '진리회향'과 '중생회향'을 언급했다. 자신의 작은 능력이라도 진리를 위해 쓰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라는 설명이다.
이 철학은 송광사에서 밥 한 끼로 구현된다. 불전에 누군가는 천원을, 누군가는 만원을 놓고 간다. 법진 스님 자신도 누가 얼마를 시주했는지 알지 못한다. 받은 이를 특정할 수 없다면, 돌려줄 때도 상대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누가 와서 시주했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면 그 가운데 일부는 또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회 날이면 신도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농장에서 직접 딴 채소가 상에 오른다. 누가 먹을지 모르지만 한 끼도 허투루 짓지 않는다. 내 그릇에서 비운 만큼 누군가의 그릇을 채우는 것, 그것이 송광사식 회향이다.
19일 공연의 프로그램명은 '빛의 여정'이었다. 한경아르떼필 브라스 주자들이 뒤카의 발레 '라 페리를 위한 팡파르'로 문을 열었고, 이어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바카날레'가 울려퍼졌다. 지휘를 맡은 홍석원은 "신성한 사찰에서 이교도의 춤을 다룬 곡을 연주해 죄송하다"고 너스레를 떨어 객석에 웃음과 박수를 끌어냈다.
야외무대는 콘서트홀보다 변수가 많다. 날씨가 첫 번째 리스크지만 이날은 하늘이 도왔다. 두 번째는 음향이었다. 천장과 벽이 없는 무대에서 관악은 소리가 관객석으로 곧장 뻗지만 현악은 쉽게 흩어진다. 홍석원은 리허설부터 이 불균형을 세심히 조정했다. 전체 음량을 무작정 키우는 대신 현악군의 밀도를 살리고 관악군의 음량과 방향을 음향팀과 맞춰, 넓은 야외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층위를 비교적 또렷하게 살렸다.
마지막은 최호영 신부의 오르간이었다. 전류가 들어가는 순간 무대의 색채가 바뀌었다. 낮고 묵직한 울림이 오케스트라 깊은 곳에서 솟아 무대를 넘어 객석으로, 그 뒤의 불상으로, 다시 산의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다. 서양 종교의 악기가 불교 사찰과 충돌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소리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소리를 가두기 위해 바깥을 차단하는 콘서트홀과 달리, 송광사에는 바람도 나무도 밤공기도 그대로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그 소리들을 침묵시키지 않고, 함께 연주했다.
법진 스님은 올해로 절 생활 51년, 수계 47년, 송광사에 몸담은 지는 15년째다. 그에게 음악회는 특별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송광사는 나비채 음악회 외에도 봉축음악회와 송년음악회를 열고, 겨울이면 수백 명이 들어가는 실내 공간에서 피아노사중주 같은 작은 음악회도 연다. 유명 연주자가 우연히 절을 찾으면 그 자리에서 '번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유명 피아니스트가 절에 왔다고 해봐요. '여기 오셨으니까 번개 음악회 한번 하고 가시오'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거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19일 열린 나비채 음악회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에서 마련한 한 끼를 나누고, 해가 지자 야외무대 앞에 줄지어 앉았다. 이진상의 피아노와 홍석원·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음악을 듣고, 마지막엔 최호영 신부의 오르간이 불상과 산 사이로 번져가는 순간을 지켜봤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법진 스님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떠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버스에 올라 한 명 한 명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힙불교'라는 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송광사는 그렇게 나누고·비우고·채운다는 세 단어를 밥과 음악으로 실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