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균의 오페라 사회학]
오늘의 눈으로 읽는
100년 전 오페라 이야기
(1) 조르주 비제 '카르멘'
지난 7월 경기 성남시에서는 전 남자친구에게 목숨을 잃은 여성의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피해자는 헤어진 연인을 스토킹으로 신고해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냈고 정부가 지급한 호신용 스마트워치까지 차고 있었다. 국가가 마련한 안전망을 모두 동원했지만 범죄를 막아내지 못했다.
교제폭력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지난해 접수된 신고가 10만5000건에 달한다. 4년 만에 두 배로 치솟으며 경각심을 요구하고 있다.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교제살인을 떠올리게 하는 오페라가 있다면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카르멘’이다. 151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첫선을 보인 ‘카르멘’은 주체적인 삶을 갈망한 어느 여성의 비극을 다룬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남성이 불러온 파국이다.
오페라는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다. 직업군인 돈 호세는 담배공장 노동자 카르멘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군인의 신분마저 저버린 채 카르멘을 따라 밀수꾼의 무리에 합류한다. 돈 호세는 카르멘을 소유하길 원하고 그럴 수록 카르멘은 거리를 두려한다. 돈 호세의 집착은 광기로 변해 간다.
그러는 동안 카르멘은 투우사 에스카미요를 새로운 연인으로 맞는다. 돈 호세는 자신을 버린 카르멘을 용납하지 못하고 끝내 흉기를 휘두른다.
지금껏 카르멘은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불행한 종말과 낭만으로 포장돼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강력 사건에 더 가깝다. 카르멘은 연인관계 정리를 통보했다가 돈 호세의 집착과 광기에 희생된 피해자다.
카르멘은 등장부터가 화제였다.
19세기 세비야에는 실제 담배공장 여성 노동자 ‘시가레라(cigarrera)’들이 있었다. 세비야 담배공장은 1812년부터 여성 노동자를 본격적으로 고용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수천 명의 여성이 공장의 주요 노동력을 구성했다. 이들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임금으로 생계를 꾸렸으며, 훗날 파업과 노동권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비제가 그려낸 카르멘은 현실에 있을법한 여성 중 하나였다.
1890년 세비야 왕립담배공장의 여성 노동자 ‘시가레라’를 그린 목판화 / 출처.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카르멘의 캐릭터와 그의 자유로운 사랑관은 첫 아리아 ‘하바네라’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 사랑은 붙잡는다고 머물지 않고, 명령한다고 따르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비제는 이 자유를 음악으로도 그려낸다. 카르멘의 선율은 리듬을 타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반면, 돈 호세의 음악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무겁고 집요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에서 집착으로 기울어가는 과정이 음악의 표정에도 배어 있다.
작곡가 비제는 카르멘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돈 호세의 집착을, 투우장 안팎의 음악적 대비와 겹쳐놓는다. 경기장 안에서는 군중이 에스카미요를 향해 환호하고 익숙한 투우사 주제가 울려 퍼진다. 반면 경기장 밖에서는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한다. 작품 곳곳에서 죽음을 암시해온 ‘운명 동기’도 다시 등장한다. 환호와 축제의 공간 바로 옆에서 한 여성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오페라 '카르멘'을 작곡한 프랑스의 조르주 비제 / 사진. 한경DB
카르멘은 사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돈 호세에게 카르멘의 이별은 존중해야 할 상대의 의사가 아니라 자신이 되돌려야 할 관계의 실패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선택을 부정하고, 동선을 쫓고, 새 연인을 질투하고, 끝내 폭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과정은 오늘날 ‘스토킹’과 ‘교제폭력’, ‘교제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범죄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
1875년 파리 오페라코미크에서 초연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포스터 / 출처. 프랑스국립도서관 Gallica·Public Domain
‘카르멘’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결말 자체는 아니다. 151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도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카르멘’을 접할 수 있는 무대가 다음달 열린다. 10월 2~3일 대구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제23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개막작이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부산 북항 야외 랜드마크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야외오페라 ‘카르멘’이 관객을 만났다.
정명훈이 지휘한 부산 북항 랜드마크 부지 야외오페라 '카르멘' 공연 장면 / 클래식부산 제공.
익숙한 ‘하바네라’와 투우사의 노래를 따라가다 보면, 이번에는 카르멘과 돈 호세의 관계를 단순한 비극적 사랑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그 비극을 지금 어떤 이름으로 읽느냐에 따라 무대의 의미는 달라진다. ‘카르멘’이 오늘의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 폭력이 되는가.
조동균 기자
100~200년 전 탄생한 명작 오페라에는 오늘의 사건사고를 보는 듯한 비극이 담겨 있습니다. 스토킹과 교제살인, 빈곤과 계급 갈등, 가짜뉴스와 권력 남용까지. <오페라 사회학>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비극과 모순을 오페라로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