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중지 약물의 단계적 도입을 추진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만이다.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임신 9주 이내를 대상으로 인공 임신중지 약물을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식약처의 품목허가 심사와 수입·품질검사를 거쳐 이르면 내년 1분기 국내 의료 현장에 도입하는 게 목표다.
이번 결정은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임신중지 약물 허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곽순헌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처방 범위와 의료인 책임, 청소년의 보호자 동의, 건강보험 적용, 의료기관 확보 등은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프진’이란 제품명으로 널리 알려진 경구용 임신중지 약물은 2024년 기준 세계 101개국에서 허용하고 있다.
제도 밖 맴돌던 임신중지약…대통령 지시로 7년만에 도입 李 "해외직구로 사고위험 노출"…현대약품, 세 번째 승인 도전
정부 발표에 따르면 경구용 임신중지 약물은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 기간 부작용 발생 양상 등을 살핀 뒤 약국 조제 방식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임신중지 약물 도입 논의는 헌법재판소가 2019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로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본격화했다. 그러나 임신중지의 허용 범위와 방법, 약물 처방·관리 절차를 규정할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도입은 번번이 미뤄졌다.
입법 공백이 장기화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치 갈등이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종교계·생명윤리 단체 등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임신중지를 도덕적 금기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까지 맞물리면서 정치권도 적극적인 입법에 나서지 못했다.
장기간 표류하던 도입 절차는 대통령 지시로 급물살을 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직구 약물을 복용하다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라며 “안전하게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가장 빠르게 시장에 나올 제품은 현재 식약처 품목허가 심사를 받고 있는 ‘미프지미소’다. 영국 라인파마 인터내셔널이 개발하고 현대약품이 수입을 맡는 제품이다. 현대약품은 2021년 첫 신청 이후 세 번째로 품목허가에 도전하고 있다.
신준수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업체가 보완자료를 제출한 뒤 품질검사 등을 마치면 이르면 내년 1분기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