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0시 한국조폐공사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때아닌 ‘오픈런’이 벌어졌다. 미국 게임회사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내놓은 ‘디아블로 30주년 기념 메달’ 굿즈를 사려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다. 이날 판매 시작 10분 만에 홈페이지 접속 대기 인원은 1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메달 가격은 479만5000원. 이날 금 시세(293만원)보다 약 65%의 프리미엄이 붙은 고가지만, 오전에 풀린 금메달(약 100개)은 20분도 지나지 않아 완판됐다. 개당 33만3000원인 은메달 400여 개도 곧바로 품절됐다.

수십만~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게임 굿즈가 순식간에 동난 건 게임업계 수익 모델이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수 게임의 축적된 팬덤이 게임 내 결제를 넘어 고가 실물 상품까지 구매하면서 지식재산권(IP)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0~2000년대 게임을 즐긴 세대가 구매력을 갖춘 30~40대가 된 점도 이 같은 고가 굿즈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500만원인데 20분 만에 다 팔렸다"…난리 난 '이 상품' 정체

◇3배 프리미엄 가격에도 산다

한국조폐공사는 블리자드와 손잡고 디아블로 30주년 기념 금메달 200개, 은메달 800개, 은 불리온 메달 1000개를 제작해 이날 판매했다. 한국조폐공사 관계자는 “출시 두 시간 후인 낮 12시 기준으로 1차 물량 2000개 중 1499개(금 147개·은 583개·불리온 769개)가 판매됐다”며 “높은 수요로 오후에 물량을 추가로 풀었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10시10분께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에 이용자가 몰려 ‘접속 대기’ 창이 떠 있다. ‘디아블로 30주년 기념 메달’을 사기 위해 1500여 명이 한꺼번에 접속했다.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 캡처
14일 오전 10시10분께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에 이용자가 몰려 ‘접속 대기’ 창이 떠 있다. ‘디아블로 30주년 기념 메달’을 사기 위해 1500여 명이 한꺼번에 접속했다.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 캡처
디아블로 굿즈는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은 채 출시됐다. 금메달에 들어간 순금 15.55g의 시세는 이날 기준 약 293만원이다. 판매가는 479만5000원으로 원가격 대비 64% 높다. 순은 31.1g이 들어간 은메달도 원재료값은 약 8만6000원에 불과하지만 개당 33만3000원에 팔렸다. 약 3.8배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지갑이 열린 데는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디아블로의 30년 팬덤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1996년 첫선을 보인 디아블로는 세계적으로 1억3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한 장수 게임 IP다. 국내에선 2000년 출시된 ‘디아블로Ⅱ’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 전성기를 이끌며 두터운 팬층을 형성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디아블로 팬덤이 특히 강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런 현상은 디아블로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조폐공사는 2023년 ‘메이플스토리 20주년 금메달’ 500개를 개당 396만원에, 같은 해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금메달 400개를 418만원에 출시했다. 모두 곧바로 완판됐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장수 게임은 이용자에게 학창 시절과 청년기를 함께한 IP로 받아들여진다”며 “이들이 30~40대로 성장하면서 고가 컬렉터 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용자 감소로 팬 한 명의 가치 커져

이 같은 현상은 구매력을 갖춘 게이머의 재테크 수요와도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판매 당시 개당 396만원이던 메이플스토리 20주년 금메달은 최근 중고 거래 사이트에 900만~1500만원대에 매물로 올라오기도 했다. 치솟은 금값과 한정판 실물 굿즈의 희소성이 합쳐진 결과다.

고전 게임 IP의 힘이 증명되자 국내 게임사도 캐릭터 상품화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가 지난 4월 출시한 ‘로스트 아크’의 첫 프리미엄 피규어 ‘카단’과 ‘베아트리스’는 개당 39만5000원에 달했지만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됐다. 회사는 닷새 만에 추가 예약 판매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공식 온라인 굿즈몰까지 열었다.

게임사가 굿즈, 팝업스토어 등 팬덤 소비를 키우는 데는 게임산업 구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이용률은 50.2%로 전년보다 9.7%포인트 하락했다. 2022년 74.4%에서 불과 3년 만에 24%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특히 신규 이용자가 줄면서 기존 팬 한 명에게서 발생하는 ‘고객생애가치’를 키우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게임 안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결제하는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이용자가 게임 밖에서도 IP와 얼마나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장수 IP의 경쟁력은 한 작품의 매출보다 팬덤을 굿즈, 공연, 오프라인 경험 등으로 계속 확장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