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납품업체가 걱정하는 '납품업체 보호법'
“중소업체들엔 며칠 빠른 정산보다 안정적인 발주 물량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내놓은 설명이다. 이 법안은 대형 유통업체의 직매입 대금 지급 기한을 상품 수령 후 60일에서 35일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통사에 물건을 파는 납품업체(셀러)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다. 그런데 일부 셀러가 오히려 반발하는 역설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1일 여야 의원들은 이 법안을 논의하면서 직매입 거래의 정산 기한을 두고 7일, 30일, 40일 등 여러 숫자를 제시했다. 박상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35일 정도로 하자”고 제안했다. 소위원장인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일단 35일로 통과시킨다”고 의견을 받았다. 정산 기한이 꼭 35일이어야 하는 특별한 근거 없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재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 성의 없이 넘겨진 것이다.

법안 개정 논의의 출발점은 2024년 벌어진 ‘티메프 사태’다. 이후 홈플러스 사태까지 이어지자 유통업체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 판매대금이 묶인 셀러들까지 연쇄 재정난에 빠진다는 우려가 커졌다. 유통사가 재고 위험을 부담한다는 이유로 셀러에게 장기간 무이자 신용을 제공하는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법안에 반영됐다.

문제는 대금 지급 기한을 일률적으로 앞당기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직매입 대금 지급 소요 기간은 다이소가 59.1일, 컬리는 54.6일 등 현재 법정 상한인 60일에 가까웠다. 두 회사는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 주요 판로다. 한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매입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정산 기한을 당기면 유통업체는 잘 팔리는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가장 먼저 주문이 줄어드는 것은 판매 이력이 없는 브랜드의 초도 물량일 것”이라고 했다.

직매입 거래가 다른 방식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유통사가 재고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직접 매입을 줄이고 실제 판매된 상품에 대해서만 대금을 지급하는 특약 매입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재고 리스크는 다시 셀러에게 넘어간다.

거래 안정성을 높이고 셀러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개선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법안 취지는 살리되 부작용은 줄일 수 있도록 유통업체의 규모와 재무 여건을 고려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셀러 보호법이 진짜 셀러를 보호하려면 중소업체가 유통사의 매입 명단에서 밀려나지 않는지 반드시 함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