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충돌하는 '3代'…숨막히는 답답함 풀릴까
청년 사업을 활기차게 꾸려나가는 도시락 조리실에 웬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국민들을 위해 대통령이 라면을 개발했다’ ‘밥은 절대 남기면 안 된다’는 등 엉뚱한 소리를 온종일 내뱉는다. 그의 등장으로 평온하던 조리실 관계엔 균열이 생긴다. 할아버지와 그의 딸, 손녀, 동업자,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충돌하기 시작한다.

2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갱(更)’은 작·연출가 본주(본명 홍주아·41)가 자신의 몸에서 감지한 변화를 세대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한 작품이다. 출발점은 몇 년 전 받은 조기 갱년기 진단.

그는 “스스로를 젊은 창작자로만 생각해 왔는데 갱년기 진단으로 기성 세대 초입에 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나는 어떤 어른, 어떤 기성세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주인공 피영(사진)은 동료 몽고와 함께 도시락 업체를 차리고 어머니 금옥까지 합세했다. 그 때 어린 시절의 금옥을 버렸던 아버지 천태(피영의 할아버지)가 수십년 만에 나타난다. 오래전 일을 하다 팔을 잃은 그는 1억3000만원의 산업재해 보상금이 든 통장을 들고 있다. 충돌의 시작은 천태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놓고 피영과 어머니 금옥의 갈등이다. 연출가 본주는 “세대갈등을 가장 처음 경험하는 곳이 가정이라고 생각해 출발선을 가족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본주는 이 가운데 특히 60대 여성인 금옥에게 애착이 갔다고 말했다. 가파른 경제성장기를 통과한 금옥은 늙은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인물이다. 본주는 “부양과 희생, 책임이 유독 많이 전가된 세대라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보고 자란 나의 엄마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말했다.

무대 중앙에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놓여 있다. 시간이 흐르며 소모되고 결국 사라지는 인간의 몸과 음식과 달리, 스테인리스 조리대와 각종 집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태를 유지한다. 본주는 “소모되는 것과 남는 것을 한 공간에 놓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세대 화합을 그리거나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다른 세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강렬한 감각을 남긴다. 본주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어리둥절한 감각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극장을 나간 뒤 밥을 먹거나 주방을 보다가 문득 작품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