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이 2023년에 ‘철도 민영화 중단’ 등을 촉구하며 벌인 총파업은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노조 요구사항에 철도 공공성 확대와 수서행 KTX 투입 등 정책·경영상 문제가 포함됐더라도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취지를 고려해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 판단 등을 둘러싼 노사 분쟁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원 “노란봉투법 취지 고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제12민사부(부장판사 임성실)는 철도노조 조합원 25명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 3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철도노조는 2023년 9월 기본급 인상과 각종 수당 개선, 철도 민영화 중단 및 수서행 KTX 운행 등을 요구하며 나흘간 총파업을 했다. 코레일이 이후 근로조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을 문제 삼으며 ‘불법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조합원 25명에게 견책과 감봉, 정직 등 징계를 내리면서 이번 소송이 시작됐다.
재판부는 “2023년 임금협상 등 임금 안건이 파업의 주된 목적이었던 게 분명하다”며 조합원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철도 민영화 중단 등은 부수적 사항이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한 코레일이 공기업이란 점을 감안할 때 노조의 철도 공공성 강화 방안 요구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철도노조와 코레일은 이전부터 철도의 공공적 발전, 대국민 철도서비스 증진, 국민 편익 증진 등을 노사 합의 목적에 포함시켰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쟁의 대상 범위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대폭 넓힌 노란봉투법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철도노조 파업은 노란봉투법 시행(올해 3월) 이전에 발생했지만, 노조법 개정 목적이 헌법상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실질화인 만큼 이번 사건을 판단할 때 법 개정 취지를 감안했다는 것이다. 노조의 파업 권리가 노동분쟁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조합원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경제·사회적 사안에도 불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노동현장 혼란 가중될 것”
철도노조 측은 판결 직후 논평을 통해 “코레일은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아직 항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노조의 쟁의 행위 대상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둘러싼 노사 분쟁이 더 격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판단하면서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를 고려한 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새로운 법이 시행되기 이전 사건에는 구법을 적용하는 게 원칙인데, 앞으로 노동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의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2심과 마찬가지로 원청의 손을 들어줬다. 상고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청 노조에 유리한 노란봉투법이 시행됐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이 노란봉투법 이전에 시작된 점을 감안해 개정 전 노조법을 적용했다. 하급심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 어긋나는 판단을 내놓으며 법 적용의 모호성이 오히려 가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