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획자 된 정치인 "서울을 핫플로"
서울지하철 2·6호선 신당역 지하에는 축구장 절반 크기의 유휴공간(약 2980㎡)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당초 10호선 환승 통로로 계획됐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무산된 뒤 사실상 잊힌 곳이었다. 그러다 2023년 시가 패션 브랜드 반스와 손잡고 디제잉과 스케이트보드, 맥주를 즐기는 ‘반스 스테이션 신당’을 열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이틀간 무려 1만여 명이 몰렸다. 인근 철공소 거리에 맛집과 디자인 작업실 등이 들어서며 ‘힙당동’으로 떠오른 지역 변화를 읽어낸 결과였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주인공은 이지현 서울시 기획총괄특보(사진)다. 그는 11일 인터뷰에서 “처음엔 안전 우려 등으로 시청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며 웃었다. 이어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안전 대책을 보완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며 “지하철역을 단순히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 일부러 찾는 공간으로 바꾸면 도시의 매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특보는 시정 철학인 ‘동행·매력’의 가치를 알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서울시 브랜드 ‘서울 마이 소울’을 기획했고, ‘해치’ 등 캐릭터 사업과 서울 굿즈를 통해 도시 브랜드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이 같은 브랜드 전략과 수립 과정을 엮어낸 <도시의 해상도>를 최근 출간했다.

이 특보는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차녀로,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문제학 학사와 아시아학 석사를,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7·8대 서울시의원을 지낸 뒤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과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을 거쳤다. 2017년 대선에서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고, 이듬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해 출범한 바른미래당에서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캠프 대변인을 거쳐 서울시 정책기획자문관으로 합류했으며 이후 비전특보·비전전략특보·기획총괄특보를 잇따라 맡았다.

그가 보는 공무원은 행정가를 넘어 ‘도시 마케터이자 기획자’다. 이 특보는 “시청이 행정 업무만 충실히 하면 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기존 방식을 넘어서는 혁신과 비전이 필요하고 그것이 곧 브랜딩”이라고 강조했다. 또 “브랜드 선순환을 위해선 도시가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시간을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며 “관광, 안전, 교통, 고용 등 다양한 행정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최근 서울시가 내세우는 ‘야간경제’ 활성화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밤에도 활력과 도파민이 넘치는 도시’를 통해 침체된 골목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책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참고할 만한 ‘업무 전략’도 담았다. “놀랍지 않으면 보고가 아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 서울시와 풀무원이 협업한 ‘서울라면’을 오 시장에게 보고할 때 일부러 출출한 오후 시간으로 잡아 라면을 직접 끓여가기도 했다. 서울라면·서울짜장은 19개국에서 166만 봉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쳤다. 서울시는 이들 브랜드 상품의 판매 수익 일부를 취약계층 지원 등에 쓰고 있다.

이 특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하려면 조직 안팎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