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821조 예산만으론 지지율 못 끌어올린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정책을 이끌어온 주역들이다. 이들이 이번에 다 그만뒀다. 구 부총리와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개각에서 빠졌고, 김 실장은 31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다음 날인 지난 1일 김 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퇴진은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한 날(지난달 28일)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날(이달 1일) 사이에 일어났다. 이 대통령이 내년 예산안 의결을 앞두고 경제팀을 전격 교체한 것이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후보자는 직전까지 재경부 1차관을 지냈다. 1971년생으로 거시경제와 금융 쪽에서 경력을 쌓았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호흡을 맞춰온 젊은 실무형 차관을 전격 발탁한 것이다. 홍지선 국토부 장관 후보자도 국토부 2차관을 거친 1970년생 실무형 관료다. 이 대통령과 경기도에서 함께 일했다.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현장 감각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 대통령이 업무추진력이 강한 인물들로 경제팀을 채운 이유는 내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짐작이 간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이 예산안에 다 들어 있다. 드라이브를 거는 일만 남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93조원(12.8%) 늘어난 821조원 규모다. 핵심은 미래대응기금 신설이다. 조성 규모가 내년 한 해 162조원이다. 이 중 45조원을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쓴다고 한다.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회계,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도 신설하고 지역균형발전 특별회계 초광역계정도 두기로 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도 경제팀 물갈이 이유다. 부동산 가격 불안 확산과 주식시장 급락, 사법부와의 갈등, 공소취소 논란, 경찰에 대한 불신 등이 겹쳤다. 지지율 반전을 위해 경제팀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당 내에서 제기됐다.

그렇다면 경제팀 전면 교체와 821조원 규모 예산안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돼야 한다. 먼저 지금의 경제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경제 위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K자형 양극화’의 아랫부분 상황이 심각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 고물가로 인한 서민 생계 고통, 고금리로 인한 취약계층 자금난, 민간 소비 침체에 따른 자영업자 폐업, 건설 등 일부 업종의 극심한 침체, 심각한 전·월세난 등이 짓누르고 있다.

국민과 공감대를 이루는 것도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X(옛 트위터)에 ‘내년 1분기 한은 금리 3.5% 예상’ 기사를 언급하며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경우에 대비해 공공주택 보유용으로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을 대량 매입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썼다. 필요한 정책일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언급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살고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 은행 빚을 진 서민이 무척 많다. 한국은행이 듣든 말든 금리를 인상하지 말라고 대통령으로서 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대통령 스스로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삶을 바꾸는 현실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올해 6월 취임 1주년 무렵에는 “벌써 임기의 5분의 1이 지났다”고 했고, 지난달 20일에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440여 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집무실에 날짜를 세는 달력이 걸려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삶을 바꾸는 현실적 성과’는 5년이라는 짧은 대통령 임기 내에 달성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국민소득, 고용, 빈곤율 등 구체적인 지표들은 하나둘씩 달성할 수 있지만 ‘현실적 성과’는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의 기본은 생존 유지다. 현상을 잘 유지하면서 낙오하는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약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도체 기업들은 지금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법인세의 대부분은 내년에 들어온다. 시차는 어찌할 수 없다. 기다릴 수 있어야 승리한다. 국민의 시계와 정부의 시계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