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 "1년에 라면 2번, 15년간 스트레칭…배우 생활 정말 힘들다" [씬터뷰]
배우에게 톱스타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때로 스스로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대중이 바라는 모습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배우 하지원(48) 역시 지난 시간 동안 배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길고 깊은 성장통을 겪었다. 카메라 불빛이 꺼진 뒤 찾아오는 고독과 세상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그가 마주한 작품이 바로 영화 '비광'이다.

오는 9월 2일 개봉하는 '비광'(감독 이지원)은 톱스타 부부 중구(류승룡)와 남미(하지원)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하지원은 "신인 때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영화 '비광'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개봉이 장기간 지연되며 긴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개봉 소식을 들은 직후 시사회 대기실에서 이지원 감독을 마주하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고백했다.

"개봉을 너무 기다렸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막상 개봉을 한다고 하니까 감독님께서 대기실에 계시더라고요. 들어가서 '드디어' 하고 말을 건넸더니 감독님이 막 우셨습니다. 저도 같이 끌어안고 울어버렸죠."

하지원은 이지원 감독을 향한 신뢰를 표했다. 드라마 '클라이맥스', 그리고 '비광'까지 연이어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인연은 남다르다.

"이지원 감독님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정말 엄청난 분입니다. 개봉이 늦어지는 동안에도 음악, 악기 하나, 의상 하나까지 감독님 손을 안 댄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후반 작업도 끝까지 만지셨고, 후시 녹음도 초반, 중간, 개봉 전까지 세 번이나 진행하며 끝까지 공을 들이셨습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꼼꼼하게 고민하고 숙성하는 과정이 남미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현장에서는 신나고 설레게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 "사회가 원하는 나 말고, 진짜 나는 누구일까"

극 중 하지원이 연기한 '남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톱스타였으나, 한순간에 추락해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버텨내는 생계형 연예인이다. 캐릭터를 받아들였을 당시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넘어 제가 놓여있는 세상과 사회,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배우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잖아요. 엄마가 원하는 나, 선생님이 원하는 나… '진정 나는 누구일까, 나의 진짜 모습은 뭘까'라는 생각을 하며 페인팅 작업도 하고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이어 "남미 역시 톱스타에서 추락해 8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살아온 인물"이라며 "사회가 받아주지 않았을 수도, 그녀가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삶을 버텨낸 인물이다. 톱스타였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추락하고 나서야 세상이 보였을 것"이라고 캐릭터의 내면에 깊이 공감했다.

대중의 시선 속에 살아가는 공인으로서의 고충도 담담히 털어놓았다. "대중에게 알려진 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늘 자제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죠. 그런 삶이 쉽지 않고 정말 힘들지만, 결국 어떠한 저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 줄담배 연습에 구성진 욕설까지… "진심으로 연기했죠"

남미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하지원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치열하게 준비했다. 거친 생계형 연예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줄담배 연습부터 구성진 욕설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장면을 위해 연습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연기를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처음 연습할 때는 저도 모르게 시선이 담배를 향하더라고요.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담배 피우는 분들을 많이 관찰했습니다. 그분들은 의식을 안 하고 피우시더라고요. 생활감 있게 대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촬영할 때만 피워서 다행히 중독되거나 끊기 힘든 건 전혀 없었죠."

욕설 연기에 대해서는 "잘 하지 않았느냐"며 동의를 구했다. "평소에 욕을 잘 안 하는 편이라 어려웠습니다. 감정의 호흡이라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연기했는데, 욕을 1년 한 사람과 10년 한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것 같아요.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진심을 다했습니다.(웃음)"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 김해숙의 터치에 터진 오열… 김시아·류승룡·김선영과의 강렬한 앙상블

작품 속에서 가족으로 엮이는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하지원에게 깊은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했다. 특히 시어머니 역의 김해숙과의 촬영 장면을 떠올리며 울컥한 감정을 내비쳤다.

"김해숙 선배님이 엔딩에서 춤을 추시며 '우리 자식들은 비광패인데 내가 마지막 패가 되고 싶다'고 하시는 대사가 있어요. 선배님과 연기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남미는 캐릭터상 울면 안 되고 단단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선배님이 제 등을 쓰다듬어 주시는 순간 하지원으로서 너무 많이 울어버렸죠. 오랜 시간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신 기운이 말이 필요 없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실제 어머니를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저희 엄마도 제 옆에서 가장 큰 지지와 힘이 되어주시는 존재다. 시사회에 오셔서 영화를 보시고 재밌게 잘 봤다고 전화해 주셨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레 나타난 딸 동주 역의 김시아에 대해서는 특별한 연기적 교감을 나눴다고 밝혔다.

"남미가 봤을 때 동주는 본인과 닮아 거둘 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남미 역시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나 정체성의 혼란과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에 자신과 닮은 아이를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예요. 시아는 나이를 떠나 배우 대 배우로서 현장에서 정말 성숙하고 몰입도가 뛰어났습니다. 요즘 만나면 오빠(류승룡)나 감독님은 모르는 줄임말을 우리끼리 쓰며 재밌게 수다를 떨어요."

남편 중구 역의 류승룡과 시누이 역의 김선영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류승룡 선배님은 평소에 아재개그도 하시고 재밌으신데, 연기할 때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중심을 잡아주셨습니다. 그 깊이가 정말 컸죠. 김선영 언니와의 작업도 너무 좋았습니다. 생활감 넘치는 연기를 물 흐르듯이 해주셨고, 마요네즈탕이나 김치 먹여주는 장면도 리허설 중 나온 애드리브였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원 "1년에 라면 2번, 15년간 스트레칭…배우 생활 정말 힘들다" [씬터뷰]
◇ "26학번 지원이요"… 낭만을 찾아 떠난 캠퍼스 라이프와 15년 유지한 자기관리

최근 유튜브 콘텐츠 '26학번 지원이요'를 통해 20대 대학생 동기들과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근황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동기들과 '왜 왔어? 꿈이 뭐야?'라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죠. 20대 때 오디션 보고 일하느라 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 해본 게 아쉬웠는데, 선배들이 동아리방에서 안무 연습하는 걸 보며 약간 눈물이 났습니다. 20대 지원이를 다시 만나러 간 느낌이었죠. 어린 동기들과 선배들이 저를 진짜 26학번 신입생처럼 반말로 편하게 대해줘서 청춘의 낭만에 푹 빠져 생활하고 있습니다."

40대 후반임에도 변함없는 비주얼을 유지하는 비결로는 성실한 루틴을 꼽았다. "남들의 추천보다는 제가 직접 해보고 좋은 것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스트레칭은 15년 넘게 하고 있고, 레몬에 꿀을 타서 마시거나 올리브오일도 많이 먹어요. 1년에 라면은 딱 두 번만 먹습니다. 학창 시절엔 1일 1라면을 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트러블이 올라와서 참죠. 예전엔 무작정 웨이트를 많이 했다면, 요즘은 가벼운 조깅이나 몸 컨디션에 맞춘 스트레칭 위주로 관리합니다."

배우로서 40대를 지나 50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하지원은 조급함 대신 준비된 태도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역할의 텀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확장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죠. '비광'은 제게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알려준 작품입니다. 신인보다 더 신인 같은 마음으로 현장의 소중함을 배웠으니, 앞으로도 진짜 배우로서 성실하게 걸어 나가겠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