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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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백'으로 묵직한 구원 서사를 제시했던 이지원 감독이 이번에는 습기 찬 욕망과 절박한 부성애가 교차하는 찐한 가족 연대기로 돌아온다. 톱스타 부부의 추락과 용의자로 내몰린 딸을 구하기 위한 사투를 그린 영화 '비광'이 베일을 벗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비광'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이지원 감독을 비롯해 배우 류승룡, 하지원, 김시아가 참석해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영화 '비광'은 한국 야구의 간판스타 중구(류승룡)와 올 타임 레전드 배우 남미(하지원)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여중생 사망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동주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이지원 감독은 화투패 '비광'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감독은 "언젠가 꼭 가족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홀로 살던 할머니 집에 친척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곤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당시 비광이라는 패가 유일하게 사람이 그려진 패라 흥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패를 가져와도 다들 반기지 않더라. 성인이 된 후 그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고, 고난을 겪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비광이라는 제목을 붙이면 적합하겠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5년 만에 빛을 보개 된 이 작품에 대해 개봉이 다소 늦어진 과정에서 치밀한 편집 과정을 거쳤음을 부연했다. 이 감독은 "배우들의 피와 땀, 눈물 그리고 특유의 질감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애썼다. 개봉이 지연되는 동안 감독으로서의 사리사욕을 덜어내고 인물들의 감정선 위주로 편집을 가다듬었다. 음악 역시 수십 차례 수정을 거치며 감정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어 스스로에 대해 "결핍이 많고 성격도 툭툭 던지듯 거친 편이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개인적 특성이 투영되어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인생의 정점에서 추락한 뒤 딸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아빠 중구 역을 맡은 류승룡은 캐릭터를 구축하며 느낀 고충과 부성애의 원동력을 설명했다. 류승룡은 "중구는 딸의 존재로 인해 삶이 완전히 파경에 이르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를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은 딸의 작은 등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린 딸의 모습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부성애가 존재한다. 그 마음이 각오가 되고, 위기의 순간에 물불 가리지 않고 돌진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특히 자연스러운 감정 축적 단계가 생략된 부녀 관계를 연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류승룡은 "임신 순간부터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자연스레 쌓이는 일반적인 부성애와 달리, 중구에게는 그러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비록 부족하고 거칠며 표현에 서툰 사람이지만, 아빠로서 아이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만큼은 명확히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동주를 구하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모습이 마치 도베르만과 같다고 여겼다. 딸이라는 존재로 인해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지만, 부성애를 자극하는 동주의 작은 뒷모습이 캐릭터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류승룡은 최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외국 영화 '오디세이'를 언급하며 유쾌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류승룡은 "'오디세이'가 집으로 귀환하는 여정을 다룬 작품인데, '비광'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결국 본루(집)로 돌아오는 게임이지 않나"라며 "삶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가치와 소중한 것을 깨닫기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 가지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만드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품이 지닌 텍스처와 촬영 비화를 전하며 이지원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류승룡은 "영화 속에서 깍두기 국물을 얼굴에 뒤집어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첫 촬영 당시 깍두기 한 조각이 머리 위에 올려져 NG가 났다. 특히 깍두기 국물이 눈에 들어가 너무 매워서 눈을 뜨고 연기하기조차 힘들었다. 마치 물파스를 눈에 바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내가 너무 괴로워하자 감독님이 OK 사인을 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완성도가 아쉬워 재촬영을 자청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톱스타였으나 한순간에 생계형 연예인으로 전락한 남미 역의 하지원은 인물을 연기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원은 "'비광' 대본을 받아 들고 남미라는 인물에 몰입하면서, 그동안 배우로서 걸어온 시간을 거시적으로 복기하게 됐다. 늘 바쁘게 살아가느라 가족들을 살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 나 자신만 바라보다가 내려와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만감이 교차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캐릭터의 극단적인 온도 차를 표현하기 위해 이지원 감독과 정성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원은 "남미는 본래 내 성격과 달리 언행이 거칠고 욕설도 서슴지 않으며, 화려한 톱스타 시절과 추락한 이후의 갭이 굉장히 큰 인물이다. 감독님과 대본을 신 바이 신으로 읽어가며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오랜 공을 들였다. 준비한 것 이상으로 현장에서는 내려놓고 연기했다. 남미를 몸소 느끼며 연기하다 보니 가슴도 아프고 힘들었다. 여배우의 삶이 쉽지 않은데, 이번 작품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어려움과 감정을 체감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거친 욕설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펼친 남다른 노력과 해프닝을 공개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원은 "평소 주변에 욕을 쓰는 사람이 없어 이지원 감독님에게 직접 배웠다. 집에서 어머니가 들으실까 봐 방 테라스에 나아가 욕 대사를 연습하곤 했다. 감독님이 직접 녹음해 준 욕설 음성을 집 테라스에서 반복해 들으며 입에 익혔지만, 그럼에도 감독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겸연쩍어했다.

이에 이지원 감독은 하지원의 욕설 연기에 대해 "20점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하지원 배우가 워낙 바르게 살아와서 그런지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욕설이 입에 자연스럽게 붙지 않더라. 현장에서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한 대목도 있다. 결국 후시녹음 단계에서 내가 직접 욕을 녹음한 뒤 하지원 배우의 목소리로 변조해 입힌 장면이 존재한다. 두 개 정도의 욕설은 내 목소리를 변주해 넣었다"고 귀띔했다.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비광' 스틸컷 /사진=㈜콘텐츠지오, ㈜플레이그램
영화 '미쓰백'에 이어 이지원 감독과 재회한 김시아는 친구의 죽음으로 용의자 선상에 오른 소녀 동주로 분해 한층 깊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한다. 김시아는 "'미쓰백'에 이어 다시 한번 나를 믿고 기회를 줘서 즐겁고 설레는 마음이었지만, 동시에 중압감도 상당했다. 전작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게 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함께 호흡을 맞춘 대선배 류승룡, 하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김시아는 "류승룡, 하지원 선배님과 한 현장에서 호흡을 맞춘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 두 분이 현장 분위기를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모습을 보며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특히 영화 후반부 아빠와 마주치는 장면이 깊게 남는다. 류승룡 삼촌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 일부러 감정을 누르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영화 '비광'은 류승룡, 하지원, 김시아를 비롯해 김해숙, 김선영, 김영민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해 위기 앞에서 손을 맞잡는 유별난 가족의 뜨거운 연대를 완성했다. '비광'은 오는 9월 2일 극장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