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태극기 수입국 된 대한민국
“20년째 태극기를 만들고 있는데 함께하던 업체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언제까지 계속 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 태극기 제조업체 동영플래그의 정구택 사장이 지난 13일 전화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며 꺼낸 말이다. 최근 광복절을 앞두고도 기대와 달리 주문이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태극기 생산을 이어가는 국내 업체는 3~5곳뿐이다. 1000원도 안 하는 값싼 중국산 제품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한 결과다. 집회 현장과 각종 행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니 태극기 상당수도 중국산이다. 규격과 재질이 제각각이며, 일부는 검은색 건곤감리 4괘 인쇄조차 선명하지 않다.

국내 업체가 가격으로 맞서기는 어렵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라 가로·세로 비율부터 태극과 건곤감리의 위치, 색상, 원단 소재와 품질까지 맞춰 제작하면 비용이 배 이상 차이 난다. 하지만 규정에 어긋나는 태극기의 유통을 막을 뾰족한 방법은 없다. 결국 시장 논리에 따라 저가 중국산이 국산 태극기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마저 수입에 의존하는데도 정부는 국내 생산 인프라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태극기를 국내에서 제작할 수 있는 업체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공공부문에서 국산과 외국산을 각각 얼마나 구매하는지조차 체계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형편이다.

생산 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 평소에는 몇백원 싼 수입품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국내 업체가 모두 사라진 뒤에는 선택지 자체가 없어진다. 국기를 제조하는 기술이 최첨단 산업은 아닐지라도 국가의 상징물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미국에서도 값싼 중국산 성조기가 자국 시장을 잠식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2024년 연방정부가 미국산 성조기만 구매하도록 하는 ‘올 아메리칸 플래그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사용하는 성조기는 완제품뿐 아니라 원재료까지 100% 미국산이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까다로운 규격을 지키며 태극기를 제작해온 국내 업체만 설 자리를 잃는 역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국내 생산 국기를 우선 구매하도록 국기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난해 발의된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공공부문이 국산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은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한 출발점이다. 정부·지자체가 앞장서 태극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내 제조업체를 지원해야 한다. 중국산 태극기가 장악한 광복절 행사는 이제 그만 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