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바지사장' 못 걸러낸 여성기업 인증
‘위장 여성기업’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여성기업을 취재하러 한 중소기업을 찾아갔더니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사람은 남성 대표였다.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실제 경영은 내가 하고 있다”며 “상당수 여성기업도 우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여성기업으로 인증받으면 법률에 근거해 정부 조달시장 우대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성이 대표이면서 기업의 최대 출자자인 회사 등으로 요건이 다소 까다롭다. 하지만 현장을 취재해 보니 곳곳에서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 여성기업 확인서 발급 서비스를 대행하는 시장이 형성될 정도다. 다수의 행정사무소에 ‘회사 업무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고 싶다’고 문의하니 “어렵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신규 발급 수수료는 200만~300만원으로 비슷했다.

위장 여성기업은 세금을 축낼 뿐 아니라 공정한 시장 질서를 흔든다. 그런데도 처벌받는 사례가 많지 않아 죄의식 없이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관련 기사를 보도하자 설명자료를 통해 “여성기업 요건 유지 여부를 정기·수시로 점검하고 허위·부정 컨설팅 업체에 대한 신고 채널을 신속히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단속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이런 사후 대응책은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력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우회 수법 등으로 불필요한 행정 비용이 증가할 수 있어서다. 여성의 기업 활동 참여 여부를 대표 직함과 회사 지분 등 획일적인 지표로 판단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일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여성활약추진법에 근거한 여성 친화 기업 인증 제도(에루보시)는 ‘기업의 여성 채용, 계속 근무, 근무 방식, 여성 관리직 비율, 경력 지원’ 등 다섯 가지 항목의 성과를 골고루 평가한다. 제도의 성과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에루보시 인증을 받은 야마가타 신용금고의 경우 여성 책임자급 직원이 2015년 18명에서 2025년 34명으로 늘었다. 여성 관리직도 같은 기간 1명에서 8명으로 증가했다.

여성 기업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정부 지원 기준이 ‘회사 대표가 여성’이라는 일부 기준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성이 오래 일하고, 많이 승진하며, 출산과 육아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여성기업의 ‘간판’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을 키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