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中 치고 나가는데…규제에 발 묶인 韓 기업
“우리 공장 한번 오시겠어요?” 얼마 전 중국의 한 대기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2년 전 ‘중국 기술의 위협(레드테크의 역습)’ 기획 취재를 했을 때와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인터뷰는 물론 공장 진입도 쉽지 않았다. 담당자들은 취재 목적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한국 언론이 중국에 관심을 갖는 데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수년간 중국 기업을 취재하면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그들의 기술보다 태도다. 요즘엔 취재 요청을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오히려 반기는 기업이 훨씬 많아졌다. 중국 기업이 세계 무대로 나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은 진작 알고 있었다. 배터리와 드론, 산업용 로봇 등은 이미 중국 천하다. 한국 조선업계가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도 중국은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LNG선 건조량에서 한국을 앞지른 데 이어 올해 상반기 격차를 더 벌렸다. 선박 엔진 등 수익성 높은 시장에서도 한국 독주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유럽과 동남아시아에 이어 지구 반대편 중남미까지 중국산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남미에서 팔린 전기차 10대 중 9대가 중국 브랜드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브라질에서는 올 상반기 비야디(BYD) 판매량이 현대자동차를 앞질렀을 정도다. 테슬라를 제외한 중국 전기차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10%에 육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무서운 것은 변화의 속도다. 요즘 중국 기업은 ‘가성비’가 아니라 탄소중립,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같은 키워드를 앞세우며 글로벌 기업과 같은 언어로 경쟁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중국의 위협을 정부만 외면하는 것 같다. 올해 신설된 국내생산세액공제만 봐도 그렇다. 국내 생산 기반이 취약한 태양광, 풍력, 2차전지, 반도체, 핵심 소재, AI 로봇 부품 등 6개 분야만 대상이 됐다. 국내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하면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 등 기간산업에 대한 지원책은 빠졌다. 국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판매 지역과 무관하게 혜택을 주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국내 판매’라는 조건이 붙었다. 해외 판매 비중이 더 큰데도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규제도 국내 생산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기업은 정부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전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한국 기업도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업계가 비상한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나마 초격차를 유지하던 산업에서도 중국에 밀리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