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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단소송법, 정교해야 오래간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집단소송법은 새로운 실체적 권리를 창설하는 법이어서는 안 된다.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민법과 특별법에 존재한다. 집단소송법은 이를 다수 피해자가 함께 행사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특별 절차다. 다만 판결이 다수에게 미치고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재무적 충격을 동반하는 만큼, 파급력은 웬만한 실체법을 능가한다. 절차법이 실체법 이상의 무게를 지닐 때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형 모델의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행정 과징금과 형사처벌 체계를 갖췄다. 여기에 어떤 집단소송을 얹느냐에 따라 제재의 총량과 균형이 달라진다. 해외 사례의 긍정적 요소는 수용하되, 오남용의 그림자까지 이식해서는 곤란하다. 구조적 피해가 빈발하는 분야부터 법률에 열거해 우선 도입하고, 판례와 실무 경험이 축적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우리 현실에 부합한다.
오남용 방지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소송허가 단계에서 법원이 타당성을 실질 심사하도록 명문화하고, 변호사 보수는 피해자에게 분배된 금액 기준으로 산정하며, 소 취하와 화해는 법원 승인을 수반해야 한다. 미수령 잔여금을 공익 목적에 지출하는 한국형 ‘사이프레(cy pres)’도 검토할 만하다.
예측 가능성도 중요하다. 과거 사건에까지 새 제도를 적용하자는 소급효 논의도 등장했다. 그러나 헌법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한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신용정보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예외 없이 시행 후 행위부터 적용하는 장래효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행 이전 사건까지 소급 적용하면 기업은 예측하지 못한 우발채무에 직면하고, 신용등급·투자유치·고용에 이르는 파장은 가격 인상과 품질 하락으로 국민에게 되돌아온다. 소급 적용은 언뜻 피해자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제도의 신뢰를 흔들어 피해구제의 실효성마저 떨어뜨린다.
최근 우리 법 체계를 ‘처벌하는 나라’에서 ‘구제하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환 방식은 성급함이 아니라 조화여야 한다. 법익과 법질서의 조화, 피해자 구제와 법적 안정성의 조화, 사법 정의와 사회경제 질서의 조화 등 세 겹의 조화 위에 세워질 때, 집단소송법은 국민을 위한 우리 법제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시급함과 정교함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정교해야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