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칼럼] 1500만 개미는 왜 각자도생 투자자가 됐나
투자 커뮤니티에 “이번에는 반드시 부자가 된다”는 글이 넘쳤다. 지난 6월 반도체 주식이 조정받기 직전까지 그랬다. 7월에는 반대로 “완전히 파산했다”는 글이 쏟아졌다. 수억원 넘는 손실과 두 자릿수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여주는 주식계좌 인증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코스피지수 8000도 싸다”며 주식하라고 부추긴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데스크는 지난달 중순 국내의 약 120만 개 레버리지 계좌에서 마진콜이 발생했고, 32만~36만 개 계좌가 청산된 것으로 추정했다.

개인투자자 1500만 명 시대의 명암이라고 하기에는 그늘이 너무 짙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분석한 주요국의 가계 주식 현황을 보면 비정상의 일면이 드러난다. 한국 가계가 직접 보유한 주식·투자펀드 비중은 금융자산의 26.5%로 미국(45.6%), 캐나다(34.3%)에 이어 세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퇴직연금 등 간접 투자를 합친 순위표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연금을 포함하면 이 비중이 67%로, 3분의 2를 넘는다. 네덜란드와 호주는 가계의 주식 직접 보유 비중이 6%에 불과하다. 그 대신 연금을 포함하면 절반을 훌쩍 넘는 수준으로 올라간다.

현금과 예금을 선호하는 일본과도 대조적이다. 일본 가계의 직접 주식 보유 비중은 16% 안팎으로 한국보다 크게 낮다. 대신 공적·기업연금이 국내외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비중이 높다.

한국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퇴직연금의 75%가 원리금 보장형이다. 국민 전체로 보면 연금 자산의 4분의 3을 수익률이 매우 낮은 예·적금에 모셔두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투적인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들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찾느라 밤낮으로 고군분투한다. 최근 미국의 기술주 변동성이 커지자 서학개미가 대거 사들인 종목은 TQQQ ETF. 나스닥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도대체 이런 불균형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우선 가계 자산의 75% 이상이 부동산에 쏠려 있는 ‘외통수’가 구조적 원인이다. 소득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오른 집값은 가계 유동성을 극도로 경직되게 한다. 12억원을 넘어선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단적인 예다.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퇴직연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익률과 복잡한 상품 구조, 비싼 수수료로 신뢰를 얻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고갈 논쟁이 반복되면서 퇴직연금은 잃어서는 안 될 ‘최후의 목돈’으로 인식된다. 선진국 1위 노인 빈곤율이라는 공포도 연금의 위험자산 회피에 한몫했다. “노후와 자산은 결국 내가 지켜야 한다”는 학습이 반복된 결과가 각자도생 투자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레버리지라는 기름까지 부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반도체 편중이 심한 한국 증시에 변동성을 한 겹 더 얹었다. 글로벌 충격이 닥치자 레버리지 청산과 패닉셀이 낙폭을 키웠다. 반면 가계 자금이 왜 제도권 연금을 외면하고 투기판으로 향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정부는 “레버리지 탓만은 아니다”고 했지만 반도체 편중과 개인 레버리지가 결합한 한국 시장의 진폭은 유난히 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 투기의 극단이 뒤섞인 거대한 실험”이라고 한국을 꼬집었다.

만약 정부가 레버리지 상품을 시장에 푸는 대신 장기·분산·저비용 투자를 기본값으로 하는 제도 개선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퇴직연금을 목돈이 아니라 노후 소득으로 받도록 세제와 중도 인출 제도를 다시 설계했다면, 미국과 호주처럼 연금 자금이 장기 주식형 포트폴리오에 자동 유입되도록 하는 장치를 강화했다면 어땠을까. 급격한 시장 조정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장기 투자 원칙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단기 투기 수요를 부추겼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의 패착은 1500만 개미를 장기 투자자로 키우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 국민이 매일 증권 앱을 열어 주가를 확인하지 않아도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산 형성 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연금과 자본시장, 세제가 그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앞으로도 ‘투자 강국’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