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조선업 재건의 걸림돌
지난달 23일 미국 워싱턴DC 메이플라워호텔 로비는 아침부터 북적였다. 한미조선협력센터 출범식에 참석하려는 인원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오전 10시 행사인데도 커피 등은 물론이고 간단한 뷔페에 와인바까지 준비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성대하게 해야 한다’는 미국 측 당부가 있었다고 했다.

가장 귀빈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처음부터 한 시간 가까이 늦겠다고 했던 그의 도착 예정시간이 계속 변경된 탓에 예상보다 많은 이가 단상에 올랐다. 끝없는 덕담이 한 시간 훌쩍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수백 명의 인파 가운데 이 자리를 마음 편하게 즐긴 이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선박 수요·노동력 등 부재

표면적으로 미국 조선업의 재건을 가장 바라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다. 작년 트럼프 정부와 관세협상 과정에서 발표된 한국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한·미 양국의 이해를 잘 조화시킨 구상처럼 보였다.

1년이 지나 조선협력센터 출범에 이르렀지만, 이 센터를 통해 양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는 정치적인 과실을 챙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의 성과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행사나 회의가 아니라 “미국산 선박 건조 실적으로 판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듣고 있는 한국 정부나 조선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이 좋을 리 없다. 현재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쪽은 미국이다. 러트닉 장관은 규제 등 문제가 있으면 다 풀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아무것도 풀린 게 없다. 트럼프 정부의 해양행동계획(MAP)은 한국 등 동맹국에서 초기 물량을 건조하겠다는 가교 전략과 비자 예외를 약속하고 있으나 의회에서 관련법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공화당 지도부에 요청하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급하면 그렇게 했을 텐데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중간선거에서 자칫하면 ‘외국에 조선업을 내줬다’며 표를 잃을까 우려하기 때문일 터다. 미국 정부 측 인사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백악관의 의지는 현실에 막혀 있다.

긴 안목으로 현실적 접근해야

행사에 참석한 미국 조선업계 관계자들의 마음은 더욱 심란하다. 이들은 이 협력이 진짜로 성사되면 자신들이 빠르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둘 사이에 끼어 곤란한 처지다. 트럼프 정부의 조급함과 달리 사업을 도모할 핵심 조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 정부는 군함 외에 상선을 지을 역량까지 갖추겠다면서 한국을 채근하고 있다. 누가 한국이나 중국산보다 4~5배 비싸게 생산된 배를 사줄 것이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는다. 군함 역시 마찬가지다. 빨리, 많이 짓겠다면서도 모든 것을 미국 내 생산을 고집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배 지을 사람도 없다.

한국에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안보 측면에서 미국이 조선 분야 역량을 회복하려는 방향은 맞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이 파트너십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더라도 차근히 현실적인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